오는 24~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리는 3차 G20회의를 앞두고 '기축통화 대체' 논란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G20회의를 앞둔 지난 15일 중국은 IMF와 세계은행의 쿼터 재편을 요구하는 등 위안화 위상을 강화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땅'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 기축통화 문제가 중점 의제로 거론되진 않으리란 전망이 있지만,최근의 달러 약세에서 확인되듯이 세계경제의 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미 달러화의 위상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제통화체제 개편 논의는 중국,러시아 등 달러 자산을 대거 보유한 외환보유국들로부터 촉발됐고,브라질 등 신흥개도국과 IMF도 가세하고 있다. 제로금리 수준인 미 국채의 차환 보유가 불가피해 미국의 경기부양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이들 국가의 입장에서는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자산 손실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글로벌 거시불균형을 배경으로 발생한 이번 금융위기는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경제운용 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기축통화국은 화폐주조 차익과 금융 · 실물거래의 집중에 따른 경제력 확대,정치경제적 패권 등 다양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 보유에 따른 비용을 감내하면서 혜택을 향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성장과 물가안정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높은 경제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통화정책 운용능력,재정 건전성,유연하고 열린 금융시스템을 고루 갖춘 국가라야 한다.

미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이번 위기를 계기로 특정 통화에 그 지위를 넘겨주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달러화가 국제통화가 된 1945년 당시와는 달리 기축통화라는 양날의 칼을 선뜻 잡고 나설 만한 국가가 현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일본,유럽 등 어떤 국가도 기축통화국으로서의 기본적인 요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모든 다른 통화를 제외하면' 달러가 최악의 선택인 형국이다. 사실 나날이 팽창하고 있는 국제금융거래를 한 나라의 통화와 경제력만으로 감당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IMF의 특별인출권(SDR)이 대안으로 논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통화바스켓인 SDR는 안정성 면에서는 우월할 수 있지만,대외 교환성이나 국제 유동성 면에서 크게 미흡하다. SDR 표시 금융자산이 낮은 거래비용으로 보유될 수 있으려면 유동성 높은 자본시장과 이를 뒷받침할 발권력을 가진 국제중앙은행이 필수적인데,과연 IMF에 대한 중앙은행기능 부여에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인 합의가 가능할지는 매우 의문시된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국제통화체제의 불안정성은 미국경제의 건전성이 가시적으로 회복되지 못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기축통화 가치가 불안정하면,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는 점이다. 환율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무역과 투자의 위축은 물론,자본이동의 단기화 및 변동성 확대로 금융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통화체제의 불확실성 증대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달러화 중심의 대외자산 통화구조를 무역구조,대외부채 구조 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둘째,외환건전성 감독기준과 금융회사 및 기업의 위험관리기능 강화를 통해 자본이동성 증대와 외환유동성위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아시아 채권시장 등 역내 자본시장 육성 및 금융협력체제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넷째,궁극적으로 원화가치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가와 자산가격의 안정을 통한 신중한 통화정책 운용과 재정건전성 회복이 긴요하다.

함준호 <연세대 교수ㆍ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