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저지른 행동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멋쩍기까지 합니다". 2004년 여름 20여일간 불법파업을 벌이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GS칼텍스 노조의 박주암 위원장(사진)은 최근 기자와 만나 "과거에 불법파업은 왜 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 위원장은 "파업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거칠게) 변해 있었다. '쉽게 설득당하는 게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며 "다 옛날 얘기다. 이젠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 산업단지에 위치한 GS칼텍스는 지금 노사상생과 협력을 바탕으로 초우량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노조는 투쟁과 권력 행사보다 회사의 파이를 키우는 데 진력하고 있다.

GS칼텍스 노조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온건합리주의 노선을 걸었다. 필수공익사업장으로서 파업이 법적으로 금지된 데다 임금 수준도 다른 사업장에 비해 높은 편이어서 '전투적 노동운동'이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바꾸면서부터 거친 '싸움꾼'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999년 민주노총에 가입한 뒤 노조 간부들은 집단으로 이념교육을 받았고,3~4년 지나면서 모두 '투사'로 변해 갔다. 이념교육을 통해 자본을 '주적'으로 삼는 계급투쟁론과 '벼랑끝 전술' 등을 배웠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지 5년째인 2004년 노조는 배운대로 '자본'에 대항해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GS칼텍스 노조는 불법파업을 감행한 대가로 노조간부 16명이 해고를 당했고,파업기간 중 임금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노조는 회사 측의 원칙적인 대응에 무릎을 꿇었고,그동안 투쟁을 부추겼던 민주노총과도 완전히 결별했다.

GS칼텍스 노조원들은 요즘 "일할 맛이 난다"고 말한다. 상생의 문화가 넘치면서 직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남인철 대리는 "이전에는 회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이제는 상생의 중요성도 알게 되고 노사간 신뢰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5년간 무분규를 이어오면서 이 회사는 강한 기업으로 변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회사의 직원교육에 대해 노조가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회사와 노조가 공동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당연히 근로자들의 생산성도 높아졌다.

GS칼텍스 노사는 상생의 문화를 더욱 다지기 위해 일본 도요타와 현대중공업 LG전자 포스코 등 국내 노사관계 모범 기업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노조도 시대흐름에 맞춰 변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이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옛날식 노동운동에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수=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