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기술에 투자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명제는 오늘날과 같이 물신풍조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되는 기술 이전에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세계시장 점유율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휴대전화 제조에 필요한 다수의 원천 기술들은 미국 회사가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우리나라 휴대전화 제조 회사들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회사에 막대한 기술이전료(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휴대전화 한 대당 5% 정도를 로열티로 지불하는 데 1995년 이후 우리 업체가 퀄컴에 지불한 로열티만 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기술강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들은 대개 기초연구가 경쟁력 확보의 견인차임을 일찍 인지하고 지원해왔다.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은 연방정부 예산의 4%에 해당하는 60억달러를 들여 2000여개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독일 DFG(독일연구협회),영국 EPSRC(공학 · 물리과학 연구협의회) 및 일본 JSPS(일본학술진흥회) 등 각국의 연구지원기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미래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기초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초연구 지원은 이러한 기술 강국들의 다양하고 견고한 지원과 비교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다양한 부가가치와 미래의 잠재력을 보지 않고 단기적인 결과물만을 중시하는 풍토로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소위 돈 되는 공학,응용기술 분야에서는 학위자 수가 늘어난 반면 수학,물리학,화학 등 기초연구 분야에서는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의 학위자를 배출해 기초연구 분야에서 인재유치와 양성이 절실함을 보여줬다. 응용기술 분야의 쏠림 현상뿐만 아니라 이공계 분야의 우수인력이 미국 등 해외에 머무르며 국내 연구계로 복귀하지 않는 두뇌유출 현상도 심화됐다. 기초연구 및 원천기술 연구는 실질적인 결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채택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랜 기간 축적된 기초연구 분야의 성과는 다양한 응용기술로 파생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실제 기업에서 응용되거나 생활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이렇듯 기초연구를 지원할 필요성이 높아진 가운데 정부는 기초연구 분야에 올해에만 작년 대비 3200억원 늘어난 1조6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2012년에는 4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한국과학재단,한국학술진흥재단,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한'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해 분산된 지원체제를 단일의 통합지원체제로 지원 기관을 정비했으며,기초 원천연구 투자 확대 및 연구역량 강화를 통한 국가 과학기술의 기초체력 배양을 위해 정부 R&D 예산 중 기초연구 투자 비중을 현 25%에서 2012년 35%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또 창의적 개인 기초연구비를 대폭 확대해 이공계 교수의 기초연구비 수혜율을 높여 개인 기초연구를 강화한다. 기초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그 동안 12개의 단위사업으로 나뉘어 있던 기초연구사업 단위도 5개 단위사업으로 단순화해 수요자 중심으로 체계화했다.

당장 돈이 되는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기초연구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미래 성장 동력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부실한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연구 위에 쌓은 응용기술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박찬모 <한국연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