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23일 아침 서울 명동의 사무실로 출근,자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라는 짧은 지시만 남기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휴대폰도 하루종일 꺼져 있었다.

황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사의(辭意)발표문'에서 "금융위원회의 징계조치에 의해 KB금융지주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법률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우리나라 선도 금융그룹 최고경영자로서 저 자신의 문제로 조직의 성장 발전이 조금이라도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KB금융 회장직과 이사직 모두 사임하기로 했다. 황 회장은 "전에 몸담았던 우리은행에서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한 손실이 발생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다"며 "이와 관련된 모든 분,특히 우리은행과 KB금융 임직원 여러분께 그동안 여러 가지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은행 재직시 CDO(부채담보부증권) · CDS(신용부도스와프) 투자와 관련한 금융위원회의 징계조치에 대해서는 수차례의 소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의 주장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억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성장 발전의 기반이 돼야 하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저에 대한 징계로 인해 금융인들이 위축되고 금융시장 발전에 장애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의 이날 사의 표명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1일 "황 회장은 평면적으로 보면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며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황 회장보다 수위가 낮은 '주의적 경고' 처분을 받은 우리은행장 출신의 박해춘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자진해서 물러나 황 회장에게 부담을 줬다.

KB금융지주 이사회도 사외이사들 중심으로 황 회장의 대표이사직 거취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면서 25일 이전까지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등 황 회장을 압박했다. 예금보험공사도 황 회장 개인에 대한 민사소송 방침을 밝히면서 심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예보는 25일 임시 예보위 회의를 열고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