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사에 '몽유도원도'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작품이 또 있을까.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데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탓에 오랜 기간 종적을 감췄다가 결국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문화재 소유권에 대한 국제 관행상 반환 받기 어려워 구걸하다시피 빌려서 감상할 수밖에 없다.

몽유도원도는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안평대군은 어느날 꿈에서 본 무릉도원 풍경을 안견에게 들려주며 그려보라고 했다. 안견은 비단에 수묵담채로 붓질을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 때가 1447년이다.

그림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내용이 전개되는 이색적 구성을 보여준다. 현실 세계는 왼쪽 야산으로,꿈속의 도원은 오른쪽 바위산으로 표현했다. 화면의 왼쪽은 정면에서,오른쪽은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각을 달리해 그렸다. 안평대군은 지인들과 함께 그림을 본 후 각자 감상문을 적게 했다. 제서(題書)와 발문(跋文)은 안평대군이 쓰고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 20여명이 자필로 찬문(讚文)을 붙였다. 그림 크기는 38.6×106.2㎝지만 찬문을 합하면 20m나 된다.

이렇게 시(詩) 서(書) 화(畵)가 조화된 걸작은 1453년 계유정난 때 자취를 감췄다. 수양대군이 동생 안평대군과 김종서 일가 등을 주살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빼돌렸을 것으로 짐작할 뿐 실상은 알 길이 없다. 이 그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93년 일본에서다. 규슈 가고시마 시마즈 가문의 소장품이란 기록이 붙어있어 임진왜란 때 반출됐을 걸로 추정된다. 1939년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고 1950년대 초 덴리대(天理大)가 구입해 소장해왔다.

몽유도원도가 오랜만에 고국 나들이를 해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박물관 100주년 특별전'(29일~11월8일)에 전시된다. 1986년,199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국내전시다. 아쉽게도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29일부터 10월7일까지 딱 9일이다.

우리 문화재를 외국에서 빌려 봐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엄연한 현실이다. 반환받으려면 반출 · 취득 과정의 불법성을 규명해야 하지만 그와 관련된 증거나 기록이 별로 없다. 문화재가 일단 우리 손을 떠나면 되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은 것 치고는 대가가 너무 크다. 몽유도원도를 비롯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가 7만6000여점에 이른다니 하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