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진씨(33)의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서 주인공 '나'는 눈먼 개 와조를 이끌고 집을 나온 지 3년째다.

길 위에서 20대를 보내고 길 위에서 30대를 맞이한 '나'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바로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한 다음,모텔방에서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편지를 써보낸 '나'는 가끔 친구를 통해 집에 답장이 와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나'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다양하다. 친구를 밀어서 식물인간으로 만든 239번,첫사랑 때문에 기차에 머무는 109번,자살을 생각하는 32번 등 떠안고 있는 고민은 다양하지만 외롭고 슬픈 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중 단 한명이라도 답장을 준다면 긴 여행을 마치겠다고 '나'는 작정했지만,모두가 따돌리기라도 한듯 묵묵부답이라 '나'의 여정은 자꾸 길어져만 간다. 그러던 중 소설가를 꿈꾸는 여자 751번이 여행의 동행자가 되면서 '나'는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이메일이나 휴대폰 같이 손쉬운 연락 방법 대신 편지라는 고전적인 통신 수단을 택한 이유에 대해 '나'는 타인과의 소통과 자기 존재의 증명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서"라고도 하고,"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답장을 보내준 사람이 없었던 '나'에게 생은 참을 수 없는 무엇으로 그치고 마는 것일까? 반전을 가장한 정답은 책 말미에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