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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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섬기기' 시대흐름 따라 변화
가족간의 만남에서 명절 의미 찾아
가족간의 만남에서 명절 의미 찾아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음력 8월 보름은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막 거두기 시작할 때라 농경민족인 우리는 신라 때부터 이날을 맞아 제천의식을 가졌다. 추석빔을 해 입고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만들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했다. 올해는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개천절과 겹쳤으므로 추석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추석 귀성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황금 연휴를 조상 섬기기에 보내는 것보다 가족간의 여행이나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이 기간에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여행을 하려면 비행기표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네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시대의 흐름을 누가 막을 것인가. 유교,특히 성리학이 강조해온 조상 섬기기가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으므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나는 이번 추석에도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고향 김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아버지 연세를 헤아려 보니 이런 식의 귀성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마음이 착잡해진다. 나만 해도 차례를 지낼 때 조상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안 든다. 뵌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10수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절을 올릴 것이다.
추석과 설날의 조상 섬기기가 여성 노동의 착취 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사실상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자기 조상도 아닌 남편의 조상을 위해 많은 시간 차에 시달리며 시댁에 내려가서,음식 장만에 요리에 설거지에….그 시간에 남자들은 고스톱을 하거나 술추렴을 하는 것이 명절 풍경이었다.
차례음식에는 정성이 담겨야 한다고 하는데,왜 시집 온 여성만의 정성을 요구하는 것인가. 여성이 주방에서 허리 아프게 음식 장만을 할 때 남자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명절 특집 프로를 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므로 미풍양속이 아니다.
결국 이제 우리도 명절의 의미를 조상 섬기기가 아니라 가족간의 만남에 두게 될 것이다. 서양에서는 1년에 두 번,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여 안부를 확인하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고인에 대한 추도는 교회에 가서 미사를 드리면서 하지 집의 차례상 앞에서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제는 명절에 고향 가는 것이 체면치례가 아니라 가족간의 정을 확인하는 따뜻한 만남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교적 짧은 명절 연휴라 찻길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통사고도 없어야 할 텐데….
몇 해 전,지금같이 추석을 앞두고 있을 때 쓴 시 한 수 적어본다.
'한가위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길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느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날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뜻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내 별명을 여기서 찾는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
추석 귀성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황금 연휴를 조상 섬기기에 보내는 것보다 가족간의 여행이나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이 기간에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여행을 하려면 비행기표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네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시대의 흐름을 누가 막을 것인가. 유교,특히 성리학이 강조해온 조상 섬기기가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으므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나는 이번 추석에도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고향 김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아버지 연세를 헤아려 보니 이런 식의 귀성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마음이 착잡해진다. 나만 해도 차례를 지낼 때 조상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안 든다. 뵌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10수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절을 올릴 것이다.
추석과 설날의 조상 섬기기가 여성 노동의 착취 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사실상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자기 조상도 아닌 남편의 조상을 위해 많은 시간 차에 시달리며 시댁에 내려가서,음식 장만에 요리에 설거지에….그 시간에 남자들은 고스톱을 하거나 술추렴을 하는 것이 명절 풍경이었다.
차례음식에는 정성이 담겨야 한다고 하는데,왜 시집 온 여성만의 정성을 요구하는 것인가. 여성이 주방에서 허리 아프게 음식 장만을 할 때 남자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명절 특집 프로를 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므로 미풍양속이 아니다.
결국 이제 우리도 명절의 의미를 조상 섬기기가 아니라 가족간의 만남에 두게 될 것이다. 서양에서는 1년에 두 번,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여 안부를 확인하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고인에 대한 추도는 교회에 가서 미사를 드리면서 하지 집의 차례상 앞에서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제는 명절에 고향 가는 것이 체면치례가 아니라 가족간의 정을 확인하는 따뜻한 만남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교적 짧은 명절 연휴라 찻길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통사고도 없어야 할 텐데….
몇 해 전,지금같이 추석을 앞두고 있을 때 쓴 시 한 수 적어본다.
'한가위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길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느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날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뜻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내 별명을 여기서 찾는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