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늘 반겨준 동구밖 당산나무, 오늘은 힘껏 껴안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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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와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라."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시 쓰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리움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멀리 떨어져 있어야 싹을 틔우고 자란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평생 무등산만을 바라보고 사는 내가 서울로 올라오기를 은근히 바라며 하는 말이었다.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한다면 고향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
친구의 말에 나는 그렇게 응수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발 1187m의 무등산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유년시절에는 남쪽에서 북쪽에 있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산 너머 세상을 동경했고,열두 살 때 광주로 나온 후에는 북쪽에서 남쪽의 무등산을 바라보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러다가,정년퇴직을 하고 53년 만에 다시 무등산을 넘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왔다. 지금까지 내 삶이 단출하게 무등산 한번 안고 도는 것으로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고향에 다시 돌아와보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촉촉해지면서 허전하고 슬퍼진다. 아마도 고향의 본디 모습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모습은 동구밖 아름드리 당산나무다.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도 고향을 생각하면 먼저 마을 앞 늙은 느티나무가 떠오르곤 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맞아주는 고향 지킴이.고향의 푸른 깃발 같은 느티나무는 의연하고도 늠연한 자태로 삶에 지친 사람을 포근하게 안아준다.
내 고향 마을 앞에는 300년쯤 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늙은 당산나무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도인의 풍모를 지녔다. 부처,예수,공자,노자나 장자로 보이는가 하면 갑오년에 죽은 동학군이거나 6 · 25 때 총 맞아 죽은 이웃집 할아버지로 보이기도 한다. 이 당산나무 밑 넉넉한 그늘은 노동에 지친 농사꾼들의 시원한 쉼터였으며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마을 일을 논의하는 여론의 광장이기도 했고 때로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유희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당산나무는 나이테만큼의 마을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나는 지금 고향의 당산나무 밑 넓고 판판한 당산 돌에 앉아 무채색 유년시절을 떠올려본다. 무더운 여름 한낮의 이곳은 어른들 차지였다. 어른들이 이곳을 차지하고 있을 때는 인사하기가 싫어서 멀리 돌아다니곤 했다. 어른들이 당산 돌에서 한바탕 낮잠을 자고 들일을 나간 후에야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우리들은 당산 돌에서 콧물과 침을 게게 흘리면서 고누도 두고 책을 읽었다. 낭자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돌에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더러는 사소한 일로 코피가 터지도록 싸움질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이 느티나무는 노릇하게 단풍이 들어 소쇄한 가을바람에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다.
당산나무 앞으로는 야트막한 냇물이 흐른다. 옛날에는 징검다리가 놓여있었고 건너편에는 여름에 손이 시리고 겨울에는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각시샘이 있었다. 우리들은 정신없이 뛰어놀다가 허출해질라치면 배가 쿨렁쿨렁해지도록 이 샘물을 퍼마시고 허기를 견뎠다. 각시샘 머리맡쯤에 물레방앗간이 있어,얼어붙은 겨울밤에는 빈 물레방아가 삐끄덕 삐끄덕 하염없이 돌아 나를 보채며 잠 못 들게 했다. 지금은 징검다리 대신 큰 콘크리트 다리가 놓였고 각시샘과 물레방아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마을 고샅은 돌담이 헐려 아스팔트가 뚫리고 주유소가 생겼다. 이제 고향의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유년시절 추억의 흔적들이 사라져버린 고향은 낯설기만 하다. 다만 변하지 않은 당산나무와 몇몇 고향 사람들이 남아 있어 위안이 되고 있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토박이로 살아온 사람들은 옛 사람들의 인정과 공동체 사랑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참사람이 아닌가 싶다. 참꽃,참나무,참새,참붕어,참기름 등 우리말 어두에 '참'자가 붙은 것은 '가짜가 아닌''귀하고 좋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평생 고향을 지키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참사람인 것이다.
고향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졌으나 고향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궁핍하기만 하다. 화려하고 풍요롭고 삶의 경쟁이 심한 도시에 비해서 시골에는 아직도 초라하고 궁핍하고 느리게 사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무채색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이들 고향 사람들에게서 삶의 진정성을 느낄 수가 있다.
지금 당장 고향으로 달려가 마을 앞 당산나무를 힘껏 안아볼 일이다. 우리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고향은 성공한 사람에게는 금의환향을 꿈꾸게 하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지친 영육을 의탁할 인생의 마지막 쉼터 같은 곳이다.
/ 문순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