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최근 주식시장에서 은행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손실을 경험했던 탓에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투자자금을 은행으로 옮겨놓는 투자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수시입출금식 예금과 정기예금 등 은행의 저축성 예금은 8월 말 이후부터 이달 23일까지 10조8586억원 증가했다. 저축성 예금은 지난 6월에는 전월 대비 8415억원 감소했으나 7월 2조1434억원의 증가세로 돌아선 뒤 8월에는 12조9994억원 늘어나는 등 증가폭이 확대되고 있다.

반면 주식시장에서는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이달 들어 25일까지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서는 원금 기준으로 2조8870억원이 순유출됐다. 주식형 펀드 순유출액은 지난 7월 3078억원,8월 2조7698억원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자산운용사의 머니마켓펀드(MMF)에서도 7월 2조4657억원,8월 6조4669억원이 순유출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도 23일까지 5조1638억원이 빠져나갔다. 지급결제 기능이 더해지면서 시중자금을 흡수할 것으로 예상됐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예탁금 증가액도 은행 예금 증가액에 미치지 못했다. CMA 예탁금은 이달 들어 23일까지 6727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은행권에서는 최근 종합주가지수가 1700선을 오르내리면서 펀드 원금을 회복한 투자자들이 자금을 은행 예금으로 옮겨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올 들어 신규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수익률이 15~20%에 이르면 차익을 실현한 뒤 예금으로 갈아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손실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요즘 펀드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고 환매해 안전한 은행 예금으로 갈아타고 있다"며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예금 증가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펀드환매 자금 등을 유치하기 위해 예금 금리를 속속 인상하는 것도 자금시장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은행들의 1년 만기 예금 금리는 최고 연 4.8%에 달한다. 작년 하반기에 연 7~8%대 금리로 유치한 정기예금 만기가 10~12월 중 집중돼 있어 이 돈을 다시 유치하기 위한 은행 간 자금확보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부 은행들은 은행권으로 최근 유입되는 시중자금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금 성격이 짙어 예금 금리를 더 올리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기 수신성 자금이 크게 늘어나면서 은행들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100%를 밑돌고 있다"며 "은행으로 유입된 펀드환매 자금 등에는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이 많다"고 말했다.

유승호/김인식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