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을 놓고 말들이 많다. 지난 2분기부터 우리 경제가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자,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쏟아냈던 '비상조치'들을 이제는 거둬들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논란이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출구전략은 군사용어 그대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계획의 개념이다. 오늘의 경제상황에서 이 전략이 거론되는 배경은 지나치게 낮은 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이는 위기극복 이후 경제를 다시 불안하게 만들 소지가 크므로 선제적으로 긴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9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사상 최저인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해도 여전히 금융완화 상태"라고 말했다. 출구전략의 핵심인 금리인상을 시사한 언급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경제정책 수장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며 "경기회복이 확실해질 때까지 적극적인 재정 ·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경제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사실이다.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최근 경기회복세가 시작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우리 또한 지난 2분기 실질 GNI(국민총소득)가 전분기 대비 5.6%의 증가율로 21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실질 GDP(국내총생산)증가율도 2.6%에 이르렀고,기업들은 언제 위기를 맞았느냐 싶을 정도로 놀랄 만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여러 조사에서도 체감경기 회복세가 뚜렷하다.

한은으로서는 강박(强迫)에 쫓길 만도 하다. 1950~60년대 무려 20년 동안 미 FRB 의장을 지낸 윌리엄 마틴은 "파티가 달아오르기 전에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 중앙은행의 임무"라고 했었다. 경기회복이 인플레 등 부작용을 키우기 전에 흥청대는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출구전략은 그 해법이 간단치 않다. 유동성 환수,양적 완화의 철회,금리인상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정석(定石)이지만,언제 어떤 규모와 속도로 실행할 것인지의 판단은 몹시 어려운 문제다.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경기회복 추세를 이어가고,경제가 자생적 성장동력을 확보한 단계에서 실행하되,인플레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출구전략의 성패가 타이밍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빨라도 늦어도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선택의 딜레마다. 미국과 일본이 그 실패사례다. 미국은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이후 초저금리 기조를 고집하면서 출구전략을 미루다 부동산 거품을 낳고,그것이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불황극복을 위해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은 '토건(土建)경제'로 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그 함정에 빠져 성급한 재정긴축과 금리 · 소비세 인상으로 디플레를 불러오면서 '잃어버린 10년'을 자초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차원의 경기부양과는 달리,출구전략에 관한 한 각 나라의 이해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이번 미국 피츠버그에서의 G20 정상회의도 '출구전략의 공조'를 논의했지만 그 실행방식은 국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했다. 국제공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무려 75%를 넘는다. 세계경제 흐름에 종속된 변수일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 우선적으로 전제돼야 하고,출구전략 또한 그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내경제 상황만을 놓고 출구전략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더구나 세계경제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폴 크루그먼이나 누리엘 루비니 교수 같은 '닥터 둠'들은 여전히 세계경제가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출구전략을 써야 할 때인지 그래서 아직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