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을 무더기로 국정감사 증인석에 앉히는 국회의 행태가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는 추석 직후 열리는 국정감사에 민간 기업인들을 대거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주먹구구식 증인 선정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무위원회는 1일 간사회의에서 우리은행의 파생금융상품 투자 손실과 관련,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홍대희 전 부행장 등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사철 한나라당 간사는 "민주당이 우리은행 전 · 현직 임원 11명을 모두 증인으로 부르자고 주장해 결론을 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증인들이 이미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이들의 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금융 당국의 잘못을 가려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정무위는 지난해 국감에서 유동성 위기와 키코(KIKO) 문제 관련,황영기 전 회장 등 5개 시중은행장을 증인으로 부른 바 있다. 덤핑 판매 등을 캐겠다며 음료업체와 정유사,자동차회사 등 민간기업인 41명을 불러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채택한 증인 30명 중 9명은 IT업계 경영진이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문제와 관련해 KT,SK텔레콤,LG텔레콤 경영진이 증인에 포함됐다. 애플코리아 대표와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각각 아이폰과 디도스 대책과 관련해 증인으로 신청됐다.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들은 중소인터넷업체 상생기금 관련법의 제정과 관련해 국감장에 나올 예정이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GS,대림건설,쌍용건설 대표이사가 산재다발 건설사라는 이유로 국감대에 오른다. 일부 의원들은 산재 사망사고가 많은 기업 6곳과 4대강 살리기 관련 건설사들을 모두 부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식경제위원회에서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관련,홈플러스 등 유통회사 대표를 불렀고 쌍용차 법정관리인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토해양위원회는 경부고속철도 TRS 특혜를 놓고 LG CNS 경영진을 부른 상태다.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에서는 긴급 대응팀을 꾸리는 등 준비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국감장에서도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무위 국감에서는 환율이 45원 급등하는 비상사태에서도 자동차와 정유사 대표이사들이 모두 출석해 하루를 공쳐야 했다. 기업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유로 회의가 3시간 늦춰지는데도 국감장을 뜨지 못했다.

'기업인 국감'은 입법과 예산,행정감독 등을 감시해야 하는 국회의 본래 기능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많은 준비를 해가도 막상 국감장에서의 질문은 몇 개 안 될 뿐 아니라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며 "정치권이 명분 없이 기업인들 군기 잡으려고 한다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