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지난 1일 취임 직후 서울메트로를 찾은 자리에서 정연수 노조위원장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조 자주성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이라며 "반드시 내년 중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재계나 학계뿐 아니라 노동계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두산중공업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한 후보가 내년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맞춰 조합비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 노조집행부 선거 과정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후보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도 지난달 말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일방적 시행을 철회해야 한다'는 금속노조의 방침과 달리 판단을 유보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이성희 인천지하철 노조위원장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중소기업 노조의 경우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노조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업에서 급여를 지급받는 구조로는 노조의 진정한 독립성과 자주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는 것은 교섭 상대방에게 자금을 지원받는 것이어서 일종의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

두 번째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통해 상명하달식의 노조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개별 노조들은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민주노총 등 상급 노조에 납부하는 조합비를 줄여야 한다. 상급 노조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 상급 노조들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지금처럼 일방적인 정치투쟁 노선을 벗어나 단위 노조 조합원의 의견을 수용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상급 노조가 그동안 도외시했던 서비스 마인드와 전문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노동계의 산별노조화도 노동계에서 더 이상 전임자 임금 지급을 요구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민주노총 등이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노조를 없애고 지역지부 체제로 전환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업에 이들 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행은 대다수 노동조합에 커다란 위기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노조의 재정독립성 회복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어려움으로,시간이 지나면서 조합비가 현실화되면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