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내년도 씀씀이가 전반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인수 · 합병(M&A) 부문을 제외하고는 시설 · 연구개발(R&D)에서 광고 · 마케팅 부문에 이르기까지 올해보다는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내년 사업계획 작성에 들어간 각 업종 대표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승자 독식' 흐름을 겨냥,주력 사업 역량 제고를 위한 투자를 적극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 각 분야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해외진출 확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설비-마케팅 투자 동시 확대

주요 기업들은 R&D 부문 투자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30대 그룹 주력 계열사를 포함한 업종 대표기업 37개사 중 62.2%는 내년 R&D 투자와 관련,'지난해보다 확대할 계획'이라는 답을 내놨다. 올해와 엇비슷한 금액을 생각하고 있는 기업은 32.4%였고,줄이겠다는 기업은 2.7%에 불과했다.

광고 · 마케팅과 시설투자에도 올해 이상의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광고 · 마케팅 예산을 올해보다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이 35.1%에 달했고,예산을 줄이겠다는 기업은 16.2%에 그쳤다. 시설투자와 관련된 질문에도 '확대하겠다'는 응답(29.7%)이 '축소하겠다'는 응답(13.5%)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경제위기의 여파로 쪼그라들었던 투자가 예년 수준으로 되돌아온다고 보면 맞다"고 설명했다. 경기회복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설비투자와 마케팅 예산확대를 통해 늘어나는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얘기다.

화학업종 대기업의 관계자는 "공격적으로 전략을 짜고 있지만 다시 경기가 악화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이에 대비해 현금흐름에 지장을 줄 만큼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업종별 온도차 뚜렷

기업들이 내놓은 내년 사업계획은 업종별로 온도차가 컸다. 올해 업황이 좋았던 전자 자동차 화학 등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시설 · R&D 투자에 적극적이었고 마케팅 예산도 상향 조정하겠다고 답했다. 내년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도 올해보다 평균 10~20%가량 높게 책정했다.

반면 이동통신과 조선 업종 기업들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짠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업체 중 한 곳은 시설투자와 마케팅 예산을 지난해보다 10%가량 삭감할 계획이라고 밝혔고,영업이익은 올해보다 20%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통신 기업들의 내년 전망도 어두웠다. 올해보다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매출과 영업이익도 올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업 기준 환율은 업종별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환율이 높을수록 실적이 좋아지는 수출기업 중 상당수는 사업 기준 원 · 달러 환율을 1100원 이하로 책정했다. 반면 에너지,항공 등 원유와 원자재를 많이 수입하는 업종의 기업들은 1200원에 근접한 1100원대 후반에서 환율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 당초 전망치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상황을 전제로 사업계획을 세워야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임직원들의 동요가 적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설문에 응한 기업

▼전자=삼성전자 LG전자 삼성SDI LG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자동차=현대 · 기아자동차 ▼통신=SK텔레콤 KT LG텔레콤 LG데이콤 ▼석유화학 · 에너지=에쓰오일 LG화학 SK에너지 한화 GS OCI ▼철강=포스코 ▼조선=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기계 · 플랜트=삼성엔지니어링 두산인프라코어 ▼항공=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해운=현대상선 ▼유통=신세계 롯데백화점 ▼전선=대한전선 LS전선 ▼시스템 서비스=SKC&C LGCNS 삼성SDS ▼인터넷 · 게임=NHN 엔씨소프트▼생활산업=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식품=CJ제일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