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민주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모두 개정헌법은 현실상황의 반영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졸중을 경험했다. 4월 북한은 김 위원장의 불확실한 건강문제,심각한 경제난,미국과의 긴장관계,남북 경색국면 등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내적으로 후계문제가 부상되고 외적으로 붕괴 시나리오가 확산됐다. 4월9일 제12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전원회의에서 국내외 현실상황을 반영한 제9차 개정헌법이 채택됐다.

개정헌법은 선군(先軍)사상을 추가했다(제3조).'변증법적 유물론'은 시대가 발전하면 사상도 발전함을 강조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 · 발전시킨 게 주체사상이고,주체사상을 계승 · 발전시킨 게 선군사상임을 보여주는 해석이다. 김정일의 통치이념인 선군사상을 김일성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과 동격의 반열에 올려 놓은 듯하다. 선군사상은 군사선행사상으로서 그 핵심은 군인과 군대다. 군인은 노동자 · 농민 · 근로인테리와 함께 주권자로 명시됐다(제4조).무장력의 사명은 혁명의 수뇌부 보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제59조).군대를 통해서 체제수호를 강화하고,사회주의 혁명을 이어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하다. 공산주의 용어가 삭제됐다(제29조,제40조,제43조).조선노동당의 정강은 변함없이 공산주의 계급혁명을 지향하고 있다. 공산주의 용어 삭제가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중국과 베트남의 개혁 · 개방에 따른 현실사회주의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계획경제와 계급혁명,집단주의가 지속 ·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현실사회주의 반영보다 북한식 사회주의에 집중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반영으로 보인다.

개정헌법의 가장 눈에 띄는 부문은 국방위원장의 지위 격상과 임무 · 권한 확대다. 국방위원장은 '최고령도자(제100조)'이고,임무와 권한은'국가의 전반사업 및 국방위원회 사업 지도,국방부문의 중요 간부 임명 · 해임,중요 조약 비준 · 폐기 및 특사권 행사,비상사태와 전시상태 및 동원령 선포(제103조)'등을 담고 있다. 국방위원장이 국가전반을 관장하는'최고령도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일의 위상과 격을 '영구 주석'으로 남아 있는 김일성과 맞추려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개정헌법은 국방위원회 중심의 국정운영 시스템 구축을 내포하고 있다. 조문상으론 국방위원회가 국가주권의 최고국방지도기관(제106조)으로 명기하고 있으나,임무와 권한은 '국가 중요정책 수립권'과 '무력과 국방건설사업 지도권' 그리고 '국가기관 감독 · 통제권'을 부여받고 있다(제109조).김정일 정권하에서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인 '국가최고지도기관'임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대사권 유지와 함께 대외사업권을 신설했다(제116조).일반적인 대외적 국가대표를 상임위원장이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근로인민의 인권존중과 보호조항(제8조)을 명기하고 있다. 인권존중과 보호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명시는 없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염두에 둔 조항 삽입인 듯하다. 경제질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개정헌법에서 간과돼서는 안될 조항이 있다. 국방위원장은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이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2조).후계자가 국방위원장직의 승계를 통해 전권을 장악케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후계자 개인 업적에 의한 정당성 확보보다 국방위원장의 법적 지위 계승을 통한 정당성 확보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개정헌법이 주민들을 위한 것인지,김 위원장을 위한 것인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선군사상을 통한 국방위원장의 지나친 권력독점은 현실사회주의 국가든 현실자유주의 국가든 모두에 비현실적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양무진 <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