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사립대학 약학과 김모 조교는 최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화공약품 판매점에 들렀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실험실습용 알코올(에탄올)을 사려 했지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또 다른 실험용 시약 판매업체에도 전화를 했지만 "10월 말에나 제품이 들어온다.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김씨는 값이 4배가량 비싼 미국산 시약용 알코올 18ℓ를 16만원에 주문해야 했다. 그는 "말통(18ℓ) 하나에 3만~4만원이면 어느 때든 손쉽게 구했는데 알코올이 없어 당황했다"며 "비싸기는 했지만 꼭 필요했던 만큼 수입 알코올이라도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때아닌 알코올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험용 알코올을 소량씩 구매해 쓰는 화학과나 약대,의과대학,이공계 연구소들은 물론 중소형 화장품 및 페인트 회사 등 알코올을 용매나 원료로 쓰는 업체들도 필요물량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

이 같은 알코올 품귀현상은 다름 아닌 신종플루 탓.감염 예방을 위해 손세정제와 손소독제 소비가 평소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 제품의 주 원료인 알코올이 일시적으로 바닥나 버린 것이다. 손소독제에는 살균용으로 공업용 알코올이 62% 정도 들어가는데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두 달간 줄잡아 수천만개의 소독제가 집중적으로 생산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때문이다. 알코올 함유율 70%짜리 손소독제를 일일 15만개씩 위탁생산하는 K사 관계자는 "평소에는 소독제에 관심이 없던 화장품 및 생활용품 위탁생산업체 100여개가 소독제와 세정제 생산에 한꺼번에 뛰어들면서 시중에 깔려 있던 알코올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상당수 업체가 손소독제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웃돈을 주고서라도 알코올을 사들이다 보니 연구소나 대학 실험실 등 비상업적 수요처에서 정작 알코올 구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알코올 값도 7월에 비해 15~30%가량 오른 상황.현재 순수 농도 95%짜리 알코올은 200ℓ짜리 한 드럼에 30만원 선에 거래중 이다.

이 같은 알코올 품귀현상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신종플루 확산 여부가 열쇠를 쥐게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알코올 소비량을 감안할 때 이미 손소독제가 과잉 생산됐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