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개월 전, EBS는 <다큐프라임>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특별기획물을 방송했다. 인간 심리를 추적한 이 다큐멘터리는 총 31가지의 다채로운 실험을 통하여 ‘착각’이라는 인간 행동의 진실을 밝힌다.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단순하다. “이 세상에 착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정말로 옳은 말이다. 그 누구도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즉 자기 자신도 항상 착각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설사 잘못된 길로 들어가도 금방 돌아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 방송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와 ‘투자’의 연결선 상에서 이 방송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왜? 돈이 관련될 때 인간의 이성과 의지력이 특히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강한 강도의 착각으로 연결되곤 한다. ‘무지’와 ‘착각’의 조합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과 ‘착각’의 조합이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실례(實例)를 하나 들어보자.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MBA 교재에 따른 ‘정답’은 ‘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단위 당) 보상(reward)을 넘는 초과 리스크(excess risk)’이다. 이는 <효율적 시장> 가설에 근거한 교과서식 정답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라는 이름표를 떼고 나면 그들의 입장은 다른 직종의 근로자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리스크는 ‘보상을 넘는 초과 리스크’ 가 아니라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커리어) 리스크이다. 물론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의 행동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자(因子)는 체계적 분석에 따른 보상과 리스크의 관계나 고객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감, 혹은 탁월함을 추구하는 도전정신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정과 이익을 도모하는 ‘자기보호’ 성향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자기보호 성향이 강할수록 주식시장 활황과 불황 사이의 골, 즉 변동성은 더 깊어지게 된다. 이 범 사회적 현상은 비 윤리적인 행동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의 결과에 더 가깝다. 직종과 무관하게 패기가 넘쳐야 할 신입사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가 전문지식이나 언어능력이 아닌 ‘인간관계’와 ‘처세술’이라는 사실 역시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교재와 언론을 통하여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통 경제학식 정보에 물들여졌고 우리의 뇌를 움직이는 뉴런과 시냅스의 조합도 그런 식으로 형성되었다. 앞서 자기 자신이 항상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사람은 설사 잘못된 길로 들어가도 금방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했듯이 우리가 배워 온 것, 그리고 주어진 정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하는 것은 실패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강연을 할 때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청중에게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한 주머니(A)에는 60개의 흰 공과 40개의 검은 공이 있고, 또 다른 주머니(B)에는 99개의 흰 공과 1개의 검은 공이 있다. 주머니 A에서 흰 공을 뽑으면 10만원을 획득하고, 검은 공을 뽑으면 ‘꽝’이다. 주머니 B에서 흰 공을 뽑으면 5만원을 획득하고 단 하나의 검은 공을 뽑으면 실패다. 10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느 주머니로 게임을 하겠는가?

질문을 받은 대다수의 청중은 항상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주머니 B를 선택하면 나에게 불리한 검은 공이 총 100개 중에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5만원을 획득하는 것은 확실하다. 주머니 A의 경우에는 상금이 5만원 더 많긴 하지만 검은 공이 나올 확률이 만만치 않다. 나는 불확실한 10만원보다는 확실한 5만원을 선택하겠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의 질문은 2002년 노벨상 수상자인 카네만(Daniel Kahneman)과 트베르스키(Amos Tversky)가 1979년에 발표한 <기대이론>*과 루스(R. Duncan Luce), 레이빈(Matthew Rabin), 쉐프린(Hersh Shefrin), 카메러(Colin Camere) 등의 행동경제학자들에 의해 체계화 된 <행동경제학설>을 응용한 질문이다. 이것은 이성에 대한 감정의 지배력, 즉 인간의 본능적인 ‘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예에서 확률에 따른 주머니 A의 총 기대값은 6,000,000원(10만원×60퍼센트×100번)이고 주머니 B의 기대값은 4,966,805원(5만원×99.3퍼센트×100번)으로서 A의 기대값이 B의 기대값보다 무려 백 만원 이상 더 크다. 따라서 백 번이라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주머니 A에서 공을 뽑는 것이 이성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논리적 확률과는 정반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머니 B를 선택한다. 왜 그런 것일까? (주: Kahneman & Tversky, 「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 Econometrica, 1979)

논리적 사고 체계에 필요한 의지와 이성이 의식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는 한, 당장 눈앞에 있는 효용에 집착하는 감정의 지배력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직 겪지 않은 미래를 ‘개념화’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인간의 두 얼굴>의 내용과 궤를 같이하며, 최근에는 심리학에서뿐만 아니라 신경과학 분야에서도 재 입증되고 있다. 위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단 ‘한 번’의 시도에서 채 1퍼센트도 안 되는 의외의 결과(즉 돈을 날리게 되는 불쾌한 상황)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상상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성은 감정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의 선택을 보호하고자 분투하는 ‘보호본능’은 합리화 과정을 통해 1퍼센트의 확률을 0퍼센트의 확률과 동일시하게 된다. 더 나아가 백 번에 걸친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순간의 상황에 몰두하고 논리적 사고가 주는 피로감을 회피하려는 본능적인 성향은 모든 기회의 총체적 합이나 평균을 논리적으로 계산하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작용한다. 행동경제학과 계량경제학에서는 ‘짜맞춘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을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라고 일컫는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경우는 우리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특정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달라지고, 그 느낌은 우리의 감정을 더욱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킨다. 프레이밍 효과가 특히 경제와 자본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돈만큼 강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를 단순한 것으로 간주하여 즉흥적이고 가벼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나 반대로 차트에서 하루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 등은 모두 욕심과 두려움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이성이 부분적으로 마비된 결과에서 나오는 비이성적인 행동이다.

무엇을 해야 옳은지 뻔히 알면서도 나의 감정을 스스로 굴복시키고 상황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리 정해진 기대값이 주어진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 확실한 확률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판단은 어떠할지 한번 상상해보라! 혼돈과 변덕의 정도가 심화 될 21세기 경제와 자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경제와 시장)을 알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인간)을 알아야 한다.

<알프레드 박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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