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우량주인 블루칩에 대한 공매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공매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이 환율 하락과 출구전략 등을 빌미로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시장에서 다시 해당 주식을 매입해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로,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을 때 사용된다. 예상대로 주가가 더 떨어진 뒤 되사서 갚으면 주식 대여 수수료를 감안하고도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작년 10월부터 금지됐다가 올해 6월1일부터 금융주를 제외하고 다시 허용됐다.

블루칩들이 최근 들어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은 이처럼 외국인을 주축으로 한 공매도로 수급이 꼬이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다만 실적에 대한 우려보다는 외국인 매도 등 수급으로 주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공매도한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쇼트커버링'이 기대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달 공매도만 7000억 넘어

8일 코스피지수는 1.09% 오른 1615.46으로 마감하며 6일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옵션만기일인 이날 프로그램 매물이 장 막판에 크게 줄어들어 당초 예상보다 적은 2512억원에 그치면서 상승폭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증시 상승에도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78억원 순매도했다. 삼성전자를 1894억원 순매도한 것을 포함해 대형 수출주를 집중 매도한 결과다. 외국인은 지수가 1700선을 넘은 지난달 24일부터 전날을 제외하고 매일 주식을 정리해 이 기간 순매도 규모는 1조원을 웃돈다.

이 같은 외국인의 움직임은 공매도와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1718.88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7일까지 공매도 규모는 1조5227억원에 달한다. 공매도 금지가 풀린 6월 한 달간 공매도 규모(1조4771억원)보다 많다. 이달 공매도 규모도 7485억원에 달해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증시가 단기간 급등해 1700선을 넘자 외국인이 주가 조정을 예상해 공매도 물량을 크게 늘렸다"며 "이에 따라 외국인에 의존하던 증시가 1600선 초반까지 밀렸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원 · 달러 환율 1200원 선이 깨지고 각국이 출구전략을 얘기하면서 공매도는 대형 수출주에 집중됐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 기간 공매도가 가장 많이 나온 종목은 LG전자(1717억원)를 비롯해 삼성전자(1565억원) 현대제철(1050억원) 포스코(955억원) 현대차(787억원) LG디스플레이(461억원) 하이닉스(453억원) 등 모두 환율에 민감한 대형 수출주다.

이들 종목은 공매도가 집중되며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LG전자는 이날 3% 이상 올랐지만 지난달 22일보다는 7.4%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12.5%나 폭락했다. 포스코도 5% 이상 빠졌고 현대차는 11% 넘게 내리며 10만원 선 아래로 밀렸다. 반면 공매도가 여전히 금지된 KB금융지주의 경우 이 기간 주가가 변하지 않아 증시 하락에도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쇼트커버링 기대감도

외국인의 공매도 공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블루칩들의 주가 약세는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블루칩들의 기초체력이 훼손됐다기보다 그동안 증시 수급을 뒷받침했던 외국인이 공매도에 나서 주가가 단기간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따라서 주가가 오를 경우 공매도 물량을 다시 사들이는 '쇼트커버링'도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 팀장은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이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잠정 집계되는 등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기업들의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오는 13일(현지시간) 발표되는 인텔을 비롯한 미국 주요 기업의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보다 높을 경우 투자심리가 되살아나 미국 증시가 상승 추세로 복귀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공매도 재등장의 빌미가 됐던 미국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서면 국내 증시 하락에 베팅한 외국인도 쇼트커버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