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1 테러 때 뉴욕의 국제무역센터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금(金) 전문가 도시마 이쓰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 빌딩에 있는 금괴들은 어떻게 됐지?' 그곳 지하 6층에 거래소의 금고가 있어서 금괴 8t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보안상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금괴의 형상은 변형되었지만 중량은 그대로인 채 회수됐다고 합니다. 엄청난 충격에도 견딘 금.'유사시의 금'이라는 말이 실감났다고 합니다.

현재 세계금협회(WGC) 한 · 일지역 대표인 그가 《황금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에서 들려주는 황금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최근 달러 약세 속에 금값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금값은 이번 위기 때문에 갑자기 오른 게 아니라 지난 10년간 4배나 상승해왔다는군요. 그는 '금시장의 동향을 보면 달러 가치 하락과 불안한 국제정세,강성해지는 국가와 쇠퇴하는 국가가 한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007년 2월 뉴욕 금시장에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자금이 몰려들어 서브프라임 위기를 예고했답니다.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중동 지역의 불안을 감지한 유대인 트레이더들이 금을 매입하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자 뒤늦게 금시장에 합류한 개인투자자들에게 고가에 매도한 사례,1990년대 유럽 중앙은행들이 보유금을 팔아 금값이 떨어졌으나 2000년대 들어 재정적자에 허덕이며 달러를 마구 찍어대는 미국 때문에 중국 · 중동 · 러시아 등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율을 낮추고 금 비율을 높이는 현상도 여러 가지 '투자 지침'으로 삼을 만합니다.

힘들게 외화를 벌어온 아시아 각국이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달러로 보유하고 있는 현실을 경고하기도 하는군요. 막상 미국은 외환보유액의 70%,유럽 각국은 50% 이상을 금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옛날부터 "금은 돈이 있는 나라로 몰린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 금 생산국의 지위를 내준 남아프리카공화국,금을 재활용해서 수출하는 데 급급한 일본,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금을 수출해 버려 창고가 텅 빈 우리의 현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