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넷인 집.첫째와 셋째가 결혼했다. 셋째 며느리는 탤런트,큰 며느리는 변호사다. 추석을 앞두고 시어머니는 장을 보자며 시장으로 며느리들을 부른다. 셋째가 먼저 오고 허겁지겁 달려오던 큰며느리는 자전거와 부딪쳐 넘어진다.

집으로 돌아온 뒤.셋째 며느리 친정에서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온다. "이건 송이버섯이고 저건 한과요,이건 특급 한우인데 드셔 보시라고…." 친정부모가 안계신 맏며느리는 이 모습을 보며 어쩔 줄 모른다. 추석에 방송된 KBS 2TV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의 두 장면이다.

드라마에선 속상한 큰며느리가 어딘가에 전화해 주문한 걸 왜 빨리 안보내주느냐고 독촉하는 정도로 끝났지만 현실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바쁜 마음에 서두르다 다친 것,동서네 친정 부모가 들이닥친 일 모두 상처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아니라도 결혼해본 사람은 다 안다. 잔인한 달은 4월이 아니라 무슨무슨 날이 잔뜩 든 5월이고,설과 추석같은 명절이 더이상 반갑지 않다는 것을.솔직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지어 소화가 잘 안된다는 사람까지 있다.

이유는 많다. 차례 비용과 양가 선물같은 경제적 문제부터 가사 분담,종교문제,고부간 · 동서간 갈등까지.걱정하던 일이 예외없이 닥치면 어쩔 수 없다 싶으면서도 화가 나는 게 사람이다. 명절증후군이 이혼을 비롯한 명절후유증으로 치닫는 이유다.

실제 명절 직후엔 이혼소송이 급증한다고 한다. 추석 연휴엔 가족과 다툰 시어머니 두 사람이 자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다툼의 발단은 종교나 유산 배분처럼 심각한 것도 있지만 동서 혹은 시누이올케 간에 부엌일을 누가 더하느냐 같은 작은 문제도 적지 않다. 식구들간에 은근슬쩍 상대를 얏보거나 아이들 학교를 비교하는 일도 화근이다. 여기에 배우자까지 "당신네 집이 어쩌구" 하면 일은 걷잡기 어렵다.

명절후유증은 대부분 그동안 쌓인 감정이 불거진 것이기 쉽다. 그러나 평소 큰 문제 없던 부부도 명절 뒤엔 한동안 냉랭해지는 수가 흔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해온 이들이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탓이다. 그렇더라도 이혼은 TV드라마에서처럼 밝고 환한 새길로만 인도하지 않는다. 명절후유증을 줄이자면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는 건 물론 말 한마디부터 조심해야 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