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본 TV광고 한 편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했다.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이 땅의 아버지들이 사진 속에 없는 건 아니다. 가족을 위해 늘 사진 밖에 계셨던 아버지'란 자막이 흐르는 어느 기업의 광고였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언제나 희생하면서 묵묵히 일해왔던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짧은 영상과 카피에 은유적으로 담아내 울림이 더 컸을 것이다.

산업시대의 역군으로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아버지들이 다시 주목받았던 시기는 다름아닌 IMF 외환위기 때였다.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쫓겨나고,운영하던 가게가 도산하는 등 아버지들의 고개가 한없이 꺾였던 시기였다. 이렇게 사회에서 배제된 아버지들은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가족에게 해고 사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양복을 입은 채 구두를 신고 매일 등산을 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로 인해 고개를 숙인 이 땅의 아버지들이 이후 모두 재기해 가장 역할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상담소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많은 분이 외환위기로 인한 트라우마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게다가 외환위기때는 가정이란 울타리 내에서 서로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다면 요즘에는 생활고와 채무문제로 가족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문제는 실패를 용인해주고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성숙한 문화와 제도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안철수씨는 실패한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벤처기업과 청소년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이 패자부활전은 이 땅에서 한 번 이상 실패한 모든 가장과 아버지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신용회복위원회가 금융소외자들에게 300만원 내외를 지원하는 소액금융지원사업도 일종의 패자부활을 위한 장치다. 처음에는 주위의 반대도 많았다. 차라리 장학사업을 하는 게 낫다는 말부터 대출회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가장이 살아야 가정의 행복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300만원은 3000만원 이상의 고마움이었고,한 번 실패와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누구보다 성실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출 연체율도 2% 이하로 금융권 대출보다 훨씬 낮았다. 이들이 모두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해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사진에 담는 믿음직한 가장의 역할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홍성표 <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ccrschairman@ccr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