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소호' 가로수길, 그곳에 가면 □□□가 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신사동 가로수길 100배즐기기 Tip
파리에는 마레,뉴욕엔 소호가 있다면 서울에는 가로수길이 있다. 2009년의 가로수길은 '메트로폴리탄 서울'이 나아갈 지향점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다. 자연과 인공미,산책과 발레 파킹,옛것에 대한 아련함과 최신 유행에 대한 욕망이 뒤엉켜 있는 이곳 가로수길은 서울 시민이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방문해볼 만한 명소가 됐다.
점점 변질돼 가는 상업성이 싫어 도산공원 인근으로,혹은 부암동으로 아티스트들이 자리를 옮겨가고는 있다지만 당분간 이곳만큼 실험적 도전의식이 충만하면서도 지리적 여건까지 겸비한 곳이 나타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가로수길엔 혼잡하지 않던 시절부터 이곳을 지켜온 '지킴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파리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준 지' 정욱준과 '가로수길의 창조자'라 불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경옥,오늘도 어김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적한 뒷길을 배회하는 포토그래퍼 보리,자발적으로 '헬로 가로수길'이라는 비정기 간행물을 발행하는 배정현과 박수진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제부터 가로수길 100배 즐기기에 나서보자.가로수길은 현대고등학교 맞은편과 신사동 방면 양쪽에서 진입할 수 있지만,우리의 순례는 편의상 신사동 쪽에서 시작하겠다.
우선 이곳에 접어들면 '학교 냉면'과 '매운 떡볶이'로 유명한 '스쿨푸드'와 '정든집'이라는 오뎅 사케바가 보인다. 스쿨푸드엔 언제나 사람이 북적대 느긋한 브런치를 즐기기엔 그리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 길 건너편에 조그맣지만 흥미를 자아내는 서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트앤드림'이라는 서점을 겸한 조그만 갤러리다. 이곳에 들러 잠시 아트북과 외국 잡지를 통해 감성지수를 높이길 권한다.
브런치를 먹을 만한 레스토랑을 찾아볼까. 맛을 인정받고 있는 베트남 음식점 '리틀 사이공'이나 사람은 늘 북적대나 마치 센강변 어느 레스토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부첼라',적당히 사람이 붐비는 '토끼(Rabbit)와 거북(Tuttle)' 정도면 썩 훌륭한 오후의 만찬을 맛볼 수 있다. 혹시 배가 많이 출출하다면 분홍색 간판이 특이한 '모던밥상'에서 이북식 만두와 서울식 백반으로 든든히 챙겨 먹어도 좋다.
후식으로는 편집매장 '플로' 맞은편에 있는 '굿이브닝 컵케이크'의 케이크,'구스티모'나 '빈스빈스'의 아이스크림을 권할 만하다. 식물원 안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블룸앤구떼'나 정통 영국식 홍차를 맛볼 수 있는 '말리'도 가볼 만하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소화도 시킬 겸 쇼핑에 나서볼까. 사실 가로수길은 도쿄의 다이칸야마처럼 많은 옷가게들이 들어서 있고,최근엔 질 스튜어트 같은 감각적인 브랜드들도 속속 입점하고 있어 어느 한 곳을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10코르소코모'의 서울 아울렛숍인 '일모'와 가로수길에 자리 잡은 디자이너들의 숍은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꼭 추천하고 싶다.
정욱준의 '론 커스텀',곽현주의 '기센',최지형의 '쟈니헤이츠재즈' 등에서 브랜드숍이나 보세숍과는 다른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가로수길에는 옷 외에도 다양한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세컨 팩토리'와 토이 전문점 '마이 페이보릿',세계 각국의 진귀한 초를 만날 수 있는 '베리진',최고의 애견숍으로 떠오르고 있는 '피오나숍' 등이 그곳이다. 또 청담동이나 사간동의 엄격한 갤러리와는 달리 젊은 예술가들의 친숙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예화랑','갤러리 홍' 등도 가로수길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이 되면 저녁식사 생각이 솔솔 난다. 오후가 되면 인파로 가득 메워진 가로수길보다 옆 골목 쪽(일명 세로수길)으로 방향을 바꿔보자.다정한 데이트라면 '페이퍼 가든 알로'에서의 근사한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옆 '다이너 라이크'에서 맛있는 맥주를 곁들이거나,대로변의 '그란데' 또는 '카사 보니타'에서 스파게티와 와인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반면 어느 정도 친숙한 이성친구와 함께라면 '쿠바'나 '뜨레'에서 음악과 함께 수다를 떨어도 좋다.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라면 치킨과 맥주가 역시 제격인데,이 경우엔 가로수길의 터줏대감이자 고추튀김이 천하진미인 '한잔의 추억'과 깔끔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후라이팬' 등이 좋은 후보지가 될 것이다.
한가지 명심할 것은 주차장이 비좁은 친구 집에 자동차를 끌고 가는 것이 큰 실례이듯,가로수길에 갈 땐 역시 튼튼한 두 다리나 요즘 한창 트렌디한 탈 것으로 각광받고 있는 자전거이면 족하다. 좁은 2차선 도로 양옆을 완전히 점거한 자동차들은 이 한적한 길을 망치는 주범이다.
김현태 월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패션팀장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