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룩과 러플(물결 주름) 장식의 페미닌 룩,그리고 블랙 컬러.'

2010년 봄 · 여름 파리패션위크(파리컬렉션)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다. 내년 봄 · 여름 세계 패션 트렌드를 미리 보여주는 파리 컬렉션이 지난 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9일 동안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꽉 짜여진 숨가쁜 일정 속에 100여개 브랜드가 각자 시즌 테마에 맞춰 개성 있는 무대와 의상들을 선보이며 각국에서 몰려든 바이어들을 사로잡았다. 여전히 블랙이 강세였고 점프수트(상 · 하의가 붙은 의상) · 가죽아이템과 속이 훤히 비치는 란제리룩이 주목을 끌었다.

샤넬, 트위드 수트ㆍ플라워 모티브로 자연스럽게

'과연 이번엔 어떤 무대를 선보일까?' 백발 · 검은 선글라스 · 블랙 재킷 차림의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이끄는 샤넬은 늘 거대하고 독특한 무대로 '패션 피플'의 관심을 모은다. 샤넬은 지난 6일 그랑 팔레에서 마련한 무대에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컬렉션에 참가한 100여개 브랜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을 뿐 아니라 무대 한가운데 거대한 마굿간을 세워 눈길을 끌었다. '꼬끼오~' 하는 닭울음 소리와 함께 대형 건초더미 속에서 우아한 모델들이 등장했다. 내년 봄 · 여름을 겨냥한 샤넬의 테마는 '전원생활'.20㎝가 넘는 통굽 하이힐,거친 장식의 트위드 소재 수트와 가방,핸드 메이드 니트 원피스 등 럭셔리하면서 세련된 느낌의 전원 패션 스타일을 제안했다. 플라워 모티브의 장식들도 두드러졌다.

디올, 클래식 재킷ㆍ란제리 드레스로 섹시하게

샤넬에 라거펠트가 있다면 디올엔 존 갈리아노가 있다. 디올 역시 파리 컬렉션을 대표하는 빅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내년 봄 · 여름 디올의 의상들은 '1980년대와 40년대의 재발견'이었다. 여성의 비명소리와 함께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여왕벌처럼 갈리아노의 검은 그림자가 잠시 스크린에 비추더니 금발 웨이브의 마릴린 먼로 같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누아르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를 살린 어깨를 강조한 트렌치 코트와 다양하게 변형한 클래식 재킷,바디라인과 코르셋이 그대로 드러나는 섹시한 란제리 드레스 등을 선보였다.
에르메스, 럭셔리한 점프 수트ㆍ가죽빅백 대세



에르메스는 실내에 마련된 쇼장 전체를 푸른 잔디로 깔았다. 싱그러운 풀냄새와 함께 테니스 경기를 연상시키는 배경 음향이 깔리며 패션쇼가 시작됐다. 에르메스는 내년 봄 · 여름 테마를 '테니스'로 잡았다. 여자 테니스 선수들처럼 머리에 넓은 헤어밴드를 한 모델들이 화이트 컬러 의상을 입고 런웨이를 걸었다. 초미니 주름치마 위에 긴 시스루 랩스커트로 레이어드하거나 엉덩이 길이의 재킷에 에르메스 특유의 가죽 빅 벨트로 마무리한 스타일이 돋보였다. 브라운 컬러의 가죽 재킷 · 원피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에르메스 가방 역시 빅백과 클러치가 대세다.

이자벨 마랑, 러플스커트ㆍ타이트한 팬츠로 엣지있게

곳곳에 기둥이 세워진 고풍스러운 공간에 마련된 이자벨 마랑의 컬렉션 무대에선 섹시미를 과시하면서도 가녀린 여성성이 적절히 조화된 의상들이 등장했다. 주요 아이템으론 스포티한 파스텔톤 스프라이트 재킷과 내추럴한 실루엣의 초미니 팬츠,겹겹의 러플스커트,몸매를 드러내는 타이트한 데님 팬츠 등이 꼽혔다. 빈티지 느낌의 프릴(잔주름),프린지(술) 등의 장식들이 이자벨 마랑풍의 '엣지'있는 스타일을 완성했다. 특히 술이 잔뜩 달린 카우보이 부츠와 깃털 장식의 귀걸이가 눈길을 끌었다.

장폴 고티에, 가죽소재로 여전사 느낌 란제리룩 연출

20년 전 마돈나의 콘(cone · 원추) 모양의 브래지어로 패션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장 폴 고티에가 내년 봄 · 여름 시즌 의상에 다시 한번 이를 재현했다. 장 폴 고티에도 여전사 느낌의 란제리 룩을 연출했다. 1980~90년대 힙합 스타일의 데님 오버롤을 오프닝 의상으로 내세웠다. 이어 콘 모양의 브라톱,새틴 코르셋을 스포티하면서도 어깨를 한껏 높인 밀리터리 느낌의 의상과 매치했다. 고대 전사들의 신발을 연상케 하는 끈 장식의 가죽부츠와 가죽 손목밴드 등이 공격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네사 브루노, 크림레이스 재킷ㆍ린넨 원피스로 귀엽게

디올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바네사 브루노도 사랑스러운 크림 레이스 재킷과 함께 속이 비칠 정도로 얇고 가벼우면서 하늘거리는 란제리 스타일의 의상들을 주로 선보였다. 주요 아이템으로는 점프수트,짧은 길이의 크롭 재킷,바네사 브루노 특유의 리넨 소재 원피스와 블라우스,스트랩 샌들 등을 내세웠다.

파리=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