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세계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닥터 둠(Dr.Doom)'이란 별명으로 세계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해온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조차 한국 경제에 대해선 호평을 내놓을 정도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구들도 앞다퉈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올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우리나라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앞날에 대해 장밋빛 전망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위험 요인은 도사리고 있다. 높은 실업률과 부동산 버블 등 국내 요인뿐 아니라 대외 변수도 만만치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우려대로 더블딥(경기 이중침체 현상)에 빠질 경우 우리만 비껴갈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의 근본 체질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기 후 1년 달라진 지표들

실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 지표들을 보면 낙관적이다. 우선 작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가장 먼저 나빠졌던 외화유동성은 사실상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금융위기 직후 국제 금융시장에서 외화 차입이 막히면서 외환보유액이 한때 2015억달러(지난 2월 말기준)까지 줄었으나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 9월 말 현재 2500억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대외신용도를 보여주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만기5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10월27일 699bp(100bp=1%포인트)까지 치솟았지만 최근들어 지난해 9월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100~120bp대로 회복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특히 외환 시장의 경우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급속히 안정되고 있어 현재로선 외환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 지표도 개선 기미가 뚜렷하다. 산업생산은 전년동기대비로도 지난 5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다. 소비지표도 최근 4개월 연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수출은 금융위기 이전으로 회복되면서 산업 지표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4분기에는 국내외 경기회복으로 수출입 모두 증가세로 반전되고 연간 무역흑자는 사상 최고치인 400억달러 내외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속속 상향되고 있다. IMF는 지난 4월 -4.0%로 전망했던 올해 성장률을 7월 -3.0%,8월 -1.8%로 높인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1.0%로 추가 상향조정했다. 내년 성장률도 당초 2.5%에서 3.6%로 올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5월 -2.3%로 잡았던 올해 성장률 전망을 지난달 -0.7%로 상향 조정했다. 피치는 지난해 말 한 단계 낮췄던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최근 '안정적'으로 원상복귀시켰다.

◆복병도 만만치 않아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의 자생력이 아직도 부족하다"(재정부 관계자)는 것이다. 경기개선 흐름은 이어지고 있으나 설비투자나 고용 등은 아직 부진해 실물회복이 더디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부의 재정 및 통화확대 정책으로 뒷받침된 경기 회복력은 연말로 갈수록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의 경우 8월 말까지 집행률은 이미 80%에 육박해 하반기 여력이 얼마 없는 상태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세계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등 대외적으로 하방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 상업부동산발 제2의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환율하락(원화절상),금리인상,유가상승 등 이른바 '신(新)3고'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그동안 원화가치,금리,국제유가 수준이 낮은 덕을 톡톡히 봤지만 이처럼 우호적인 여건이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하락은 큰 악재 요인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연구위원은 "3고 가운데 국제유가는 낮은 환율로 어느 정도 상쇄되겠지만 원 · 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0~1100원까지 내려가고 장단기 금리차와 신용등급에 따른 금리차가 벌어질 경우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후 재도약 플랜 서둘러야

따라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꿔 내성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지금까지 위기 수습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론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과제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약한 내수시장을 키워 외부로부터 영향을 덜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교육 의료 관광 등 각 부문에 걸쳐 아직 남아 있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 경쟁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위기대응에 취약했던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는 과제도 미룰 수 없다"며 "기업 효율성을 저해하는 고용시장을 개혁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