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38)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한다. 일주일에 한번은 팀 회식에서 주량인 소주 1병 이상을 마신다. 2차 맥주집까지 갔다 오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네살배기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올해 초 부족한 돈을 대출받아 마련한 105㎡(32평) 아파트를 나서는 시간은 7시40분.2000cc 승용차를 몰고 어린이집을 들러 회사까지 가는 데 50분가량 걸린다.

작년 가을 두 번째 이직을 통해 옮긴 현 직장은 근무 여건과 상사 성향 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점심은 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전날 숙취로 시원한 복어국을 먹고 싶었지만,이달 들어 아내로부터 받는 용돈이 3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줄어 최대한 씀씀이를 아껴야 한다.

회사에 출근한 지 10시간이 지난 오후 7시.간단히 맥주 한잔 하러 가자는 동료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퇴근길에 오른다. 몇 주 전부터 저녁 시간만 되면 왼쪽 배 부분이 콕콕 쑤시지만 '별일 아니겠거니'하고 오늘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45주년을 맞아 직장인 102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가상으로 구성해 본 '2009년 한국 기업 표준 과장의 하루'다. 조사 대상 1024명 중 남성은 624명,여성은 400명이었다. 대리급 직장인은 666명,과장급 직장인은 358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엠브레인EZ서베이가 조사를 맡았다.

◆결혼연령은 29~32세

대리급 직장인은 미혼율이 51.8%로 다소 높았다. 과장급은 33.8%가 미혼이라고 답했다. 결혼을 한 시기는 대리급(43.7%)과 과장급(20.7%) 모두 '3년 미만'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리 때 결혼하는 직장인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인 44.3%는 29~32세에 결혼했다. 결혼한 사람 중 '1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는 사람이 39.2%로 가장 많았다. 자녀가 2명인 사람은 전체의 33.3%를 차지했다. '자녀가 없다'는 사람도 24.0%를 기록,저출산문제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미혼인 사람 중 37.1%는 '앞으로 1~2년 안에 결혼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미혼 여성의 16.8%와 미혼 남성의 7.3%는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골드 싱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재테크 1순위는 예 · 적금

김 과장 · 이 대리의 주거유형은 전 · 월세 비율이 43%로 가장 높았다. 부모집에 얹혀사는 사람도 19.8%를 차지했다. 자기 집을 마련한 사람은 37.2%(대리급 33.6%,과장급 43.9%)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엿한 직장의 과장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내집을 장만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규모(배우자 포함)도 '1억원 미만'이 대부분(62.2%)이었다. 대부분은 당장 청문회장에 서도 흠잡을 데 없는 재산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재테크는 의외로 보수적이었다. 주된 재테크 수단으로 전체 응답자 중 50.1%가 예금 · 적금을 꼽았다. 이어 △펀드(22.7%) △주식(15.6%) △부동산(10.7%) 순이었다.

◆한 달 용돈은 21만~30만원

김 과장 · 이 대리의 가정 경제권은 누가 갖고 있을까. 여성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가정 경제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의 62.2%가 '본인'이라고 답했다. 남성의 34.4%도 '본인'이라고 응답했으나 '배우자(아내)'라고 답한 사람도 30.1%였다. '배우자와 공동 관리한다'는 답변은 남자 35.5%,여자 34.0%로 엇비슷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 상당수는 여성이 가정 경제권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한 달 용돈은 '21만~30만원'이라는 대답이 대리급(18.3%)과 과장급(22.3%)에서 모두 가장 많이 나왔다. 전체 응답자 중 11.2%는 '한 달에 10만원 이하의 용돈으로 버틴다'고 답변했다. 보유한 자동차는 1600~2000cc 준중형차가 36%로 가장 많았다.

◆70%가 한번 이상 직장 옮겨

입사 후 대리 직함을 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년(25.5%),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는 데 걸린 시간도 3년(25.7%)이란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전체 응답자 중 1번 이상 이직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71.6%였다. '4번 이상 회사를 옮겼다'고 답한 비율도 12.5%에 달했다. '1년 안에 이직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33.2%에 달했다. 3명 중 1명은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대충 만족한다'는 답변이 36.6%였다. '불만족스럽지만 결딜 만하다'와 '아주 불만족스럽다'는 각각 16.6%와 6.6%였다.

하루 평균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은 '8~10시간'이 55.3%로 절반을 넘었다. '10~12시간 머무른다'는 사람도 25.2%를 차지했다. 반면 '8시간 이하 일한다'는 사람은 9.7%로 적었다. 법정근로시간(8시간)을 대부분 초과해서 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상사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절반 가까운 45.4%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현재 상사와 마음이나 배짱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32.5%)이 '맞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23.2%)보다 높았다. 직장인들이 상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고 관심사는 노후 대비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예상외로 전체 응답자의 32.8%가 '노후 대비'라고 응답했다. 부장이나 차장급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쏟는 승진은 13.4%로 자녀교육(17.5%)에 이어 세 번째 관심사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신세대'인 만큼 아무래도 사고방식이 다름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대리급(65.2%)과 과장급(65.9%) 모두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되는 부위는 소화기 계통이 36.2%로 가장 많았다.

남성의 1주일 평균 음주횟수는 '1회'라는 의견이 38.5%로 가장 많았다. 이어 2회(24.8%), 3회(17.1%) 순이었다. '4회 이상 술을 마신다'는 답변은 7.9%였다. 남성 대리 · 과장의 38%는 자신의 주량을 '소주 1병'이라고 답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