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그들이 사는법‥정신과에 '직딩' 바글…후배 '스펙' 보면 "일찍 들어오길 잘했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과도기 세대'의 비애, 대학졸업땐 환란…결혼할 땐 집값 폭등
고민만하는 '미드필더', 자기 일만 하는 후배 보면 얄미워
고민만하는 '미드필더', 자기 일만 하는 후배 보면 얄미워
처음엔 서먹서먹했다. 초면이라 낯설어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직장인'이라는 공감대는 넓었다. 시작이 어려웠지 금세 봇물이 터졌다. 불합리한 인사와 괴짜 상사 얘기가 나오면 함께 분개했다. 이직과 자녀 교육의 필요성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테크 노하우와 스트레스 해소법을 얘기할 때는 정보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다.
한국경제신문 창간 45주년을 맞아 마련한 방담에 참석한 과장 · 대리는 5명.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다 최근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한 과장(35),증권사 경력 10년차의 주 과장(39),다섯 살 난 아이를 둔 홍 대리(35 · 여),은행원 김 과장(35),그리고 제약업계 노총각 유 과장(37)이다.
# 경기도 정신과엔 서울 '직딩' 바글바글
직장인에게 스트레스는 기본이다.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다. 가만 놔두면 깊은 병이 될 수 있어서다.
▼주 과장=주로 여행을 많이 다닌다. 2,3년 전만 해도 혼자서 일주일씩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여행이 스트레스 해소엔 최고더라.
▼한 과장=직장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건 주로 직장상사 때문 아닌가. 대리 말년차까지는 스트레스를 절대 삭히지 않았다. 과장이 되고 나서는 그냥 참고 있다. 대신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한다.
▼홍 대리=최근 다른 업무가 새로 추가됐다. 별다른 지원도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여유도 없어진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불교대학에 나가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한 과장=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도에 있는 정신과에 가봤더니 서울에 직장을 둔 직장인이 많더라.엉뚱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경기도 정신과를 찾는다고 했다. 상담을 해도 안 되면 약물을 투여하는 직장인도 있다고 들었다. 스트레스를 푸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 지금 과장세대는 '과도기 세대'
현재 과장 대리들은 1990년대 초 · 중반 학번이 주력이다. 사회에 진출할 때 터진 외환위기를 겪었다. 나름대로 맘고생도 심했다.
▼한 과장=지금 과장 세대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세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외환위기가 터졌다. 어렵사리 직장을 구했는데 사회가 '글로벌화''선진화' 라는 걸 강조하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또 2000년 들어서 결혼을 하려고 하니 집값이 급등했다. 이래저래 과도기에 처한 세대다.
▼김 과장=외국어 같은 자기계발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요즘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은 다들 외국어를 잘한다. 당장 회사 업무하는 데 필요하지는 않지만 안 하면 뭔가 불안하다.
▼주 과장=요즘 신입사원 보면 빨리 입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모두들 '스펙'이 아주 훌륭하다.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많이 알고 입사하는 직원들도 많다.
▼홍 대리=우리 회사는 '8 대 2 법칙'이 있는 것 같다. 회사 업무의 80%는 대리 · 과장급이 다 한다.
▼한 과장=앞으로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기간이 최대 10년인 것 같다. 분위기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비참하다. 45세쯤이면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 과장=직장상사 한 분은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안팎에서는 '물 먹었다'고 수근거렸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그분은 21년간이나 직장생활을 했다. 과연 21년 동안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하니 내심 부러웠다.
#능력 발휘할 수 있으면 과감하게 '이직'
대리 · 과장급 직장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이직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겼다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 과장=대기업에 7년 정도 다니다가 한 달 전에 헤드헌터를 통해서 중견기업으로 이직했다. 뭔가 새로운 활로를 찾아 변화를 주고 싶어서였다. 옮긴 직장에 만족하고 있다.
▼김 과장=얼마 전에 한 저축은행에서 연봉 2억원을 줄 테니 오라고 했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회사 규모가 너무 작아서 불안하기도 하고,계약직이기도 하고….
▼주 과장=최근 신설 증권사가 많이 생겨서 이직이 많았다. 예전에는 순혈주의가 강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약해져서 연봉을 포함해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많이들 옮긴다.
▼유 과장=연봉이 중요하긴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과장 친구 한 명이 최근 다른 회사로 옮겼다. 연봉은 그대로다. 팀장 자리를 준다고 해서 갔다. 과장으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옮긴 이유다.
#월급명세서 위조하다가 들통
직장인 지갑은 유리알이다. 대리 · 과장급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부모세대와 달리 즐길 건 즐기겠다는 게 김 과장 · 이 대리다. 그러니 어떡하든 비자금을 만들 수밖에 없다.
▼한 과장=용돈을 만들기 위해 주변에 두 명 중 한 명은 주식투자를 한다. 그런데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투자금도 커지지만,손실도 그만큼 커지는 것 같더라.
▼홍 대리=업무상 장중에 증시를 들여다볼 수 없어 장기투자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은행에 넣는 것보다는 낫더라.
▼김 과장=아내가 같은 은행에 다닌다. 용돈을 받아 쓴다. 급여명세서 세부 항목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비자금 조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주 과장=몇 년 전 비자금을 조성하려고 월급명세서를 조작하기도 했다. 엑셀로 월급명세서와 똑같이 만들어서 집에 갖다 줬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서 경을 친 적이 있다.
#후배들 보면서 '리더십' 진지하게 고민
대리와 과장은 직장의 '허리'다. 조직의 성과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부서장을 보필하면서도 후배들을 잘 이끌고 나가야 하는 존재다.
▼한 과장=요즘 신입사원들은 자기 주장도 뚜렷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그러나 정보를 분석하고,실행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미숙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과장,대리들이 훨씬 우위에 있다.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홍 대리=자기 할 일만 하는 후배들을 보면 얄밉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우리는 저러지 않았는데'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부아를 참지 못해 마구 퍼부었더니 다음날 회사에 나오지 않은 후배도 있더라.나중에 나도 나쁜 상사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반성도 했다.
▼유 과장=술자리에서 후배랑 '직장상사' 험담을 하다 보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후배들 눈에 나는 어떻게 비쳐질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할 것 같다.
김동윤/이관우/정인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