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에게 듣는다] (3) "금융위기 부른 과잉 레버리지…지금은 너무 줄여 오히려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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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지나코플러스 예일대 경제학 교수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와 금융위기의 불씨였던 미국 주택시장은 조만간 회복될 수 있을까. S&P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가 전월 대비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주택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존 지나코플러스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54)는 "미 주택가격이 당분간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가격이 저점을 형성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차입이 어려워진 탓에 매수세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전에는 5%의 계약금(다운페이먼트)만 있으면 집을 샀지만 지금은 30%를 내고도 대출을 받기 위해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축소된 레버리지(차입)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미 주택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체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논리다. 레버리지 사이클 이론을 제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나코플러스 교수를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그는 헤지펀드 파트너로 자산 운용에도 관여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터진 뒤 금융사는 물론 가계가 레버리지 축소에 나섰다. 과잉 레버리지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는가.
"레버리지가 오히려 지나치게 조정(over corrected)됐다. 이제는 레버리지 수준이 너무 낮은 게 문제다. 집을 사기 원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30~35%의 다운페이먼트를 내고도 대출을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에는 다운페이먼트 비중이 20%,10% 5%,3%로 계속 떨어졌다. 레버리지가 지나칠 정도로 높았다. 레버리지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지 않으면 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나와도 집을 사기 어려워진다. 위기 전에는 모기지 관련 증권 투자의 레버리지도 트리플 A 기준으로 평균 6대 1 정도였다. 구조화증권회사(SIV)를 설립해 차입을 통해 증권에 투자했다. 그런 시장이 다 죽고 이제는 레버리지 비중이 1대 1에 불과하다. 소비자뿐 아니라 은행들도 차입을 통해 자산에 투자하기 어려워졌다. "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금리 외에 레버리지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 경기 활성화 때는 FRB는 레버리지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인지했어도 공식적으로 모니터링조차 하지 않았다. FRB는 지나치게 높은 레버리지를 막았어야 했다. 지금은 레버리지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자산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레버리지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또 다른 거품을 막을 수 없다. "
▼하지만 레버리지 수준을 적절히 관리하는 게 어려운 일 아닌가.
"레버리지 측정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레버리지 수준 파악이 가능하다. 금융감독당국은 은행과 헤지펀드의 증권 투자 레버리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선호하는지 등을 설문조사해 평균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2003년부터 2006년 새 레버리지 수준이 두 배로 높아졌다. 자산가치는 그 이상 치솟았다. 레버리지가 집값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전체 경제로 봐도 지나친 레버리지가 있었던 것이다. 적정 레버리지 수준을 몇 배라고 못박아 얘기할 순 없지만 레버리지 수준이 얼마나 급작스럽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자산 붐이 일 때는 레버리지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 딜러들에게 증거금률을 높이도록 유도하면 된다. "
▼미 주택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지 않다. 현재는 레버리지가 지나치게 축소돼 있다.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압류주택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집값 폭락으로 주택가치가 갚아야 할 모기지 금액보다 떨어진 세대주는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압류를 당하면 주택가격이 더 떨어져 이해관계자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들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금을 줄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은 원금을 줄여주면 자산상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꺼린다. 결국 빚을 줄여주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근본적인 문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주택 압류를 막기 위한 정부의 채무재조정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
▼왜 정부가 원금을 깎아주는 방식의 권고를 무시한다고 보는가.
"모기지를 제때 상환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직장을 잃어 빚을 갚을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기지를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채무를 불이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산가치 폭락이다. 현재 주택가치가 갚아야 할 모기지 상환액을 밑돌면 빚 상환을 중단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 다음으로 은행을 보호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은행은 원금의 상각을 꺼린다. 부실이 드러나서다. 하지만 적정 자산가치를 반영하는 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압류가 발생하면 은행은 1달러당 25센트 정도밖에 상환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50%의 원금을 탕감해줘 압류를 막을 수 있다면 1달러당 50센트를 상환받게 된다. 은행이 지급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정부는 이를 알면서 방관하고 있다. "
▼아직도 금융부문에 적지 않은 부실 우려가 있다는 얘긴데,모기지 증권을 보유하고 있는 많은 은행들이 지급 불능에 빠질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그들은 정확한 회계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얼마나 많은 은행들이 지급 불능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금리를 낮춰 은행들에 예대 마진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만 하고 있다. "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에 대한 평가는.FRB에 더 많은 감독권한을 주는 게 바람직한가.
"아직 실제 이뤄진 게 없다. 물론 FRB가 은행을 감독할 수 있는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 특히 대형 은행의 경우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대형 은행의 레버리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일종의 자본에 대한 총 차입을 따지는 투자자 레버리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기지 증권 투자쪽도 봐야 하고 은행이 어떻게 대출을 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담보를 요구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담보 요구 관행에 큰 변화가 있으면 FRB가 적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
▼하지만 금융사들의 수익성은 많이 개선되지 않았나.
"신용위기가 터진 뒤 자산가격이 최악의 상황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FRB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췄다. 은행은 예금자들에게 이자를 주지 않아도 된다. 은행들은 예금자 돈으로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진 모기지 증권을 살 수 있다. 당연히 엄청나게 돈을 벌 기회가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은행들이 지급 여력을 갖도록 1,2년 정도 돈 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
▼월가 금융사들의 지나치게 많은 보너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단기성과 중심의 보너스 체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만약 몇 년에 걸쳐 금융사에 해악을 끼쳤다면 지급 보너스를 거둬들이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지금은 단기에 투기를 통해 돈을 벌면 큰 보너스를 챙기고 무더기 손실을 보면 직장을 잃으면 그만이다. 트레이더들은 천문학적인 성과급을 받거나 아니면 한푼도 못 받는다. 이는 공정하지 않다. 잘못하면 지급한 돈을 환수하는 장치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
▼가장 바람직한 은행 모델은.
"글래스 스티걸법(1933년에 제정된 상업은행에 관한 법률로서 서로 다른 금융업종 간 상호 진출을 금지한 게 골격) 시대로 돌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은행 예금을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위험을 떠안을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최근 금융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금자들은 은행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려는지에 관심이 없다. "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어떤 경기회복 패턴을 예상하는가.
"최악의 위기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FRB의 적극적인 조치에 힘입어 뱅크런(예금 대규모 인출사태)을 막았지만 실업률이 10%에 가깝다. 주택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다. 경기 회복은 'L자'혹은 'W자' 형태가 될 것이다. "
▼엘링턴 자산운용그룹 파트너인데 직접 펀드운용에 관여하나. 수익률은.
"헤지펀드에 개인 자금을 투자했다. 하루 하루 운용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큰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의견을 내고 있다. 투자 수익률은 공개할 수 없다. 엘링턴의 운용자산 규모는 20억달러를 넘는다. "
뉴헤이븐=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