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진경풍속화의 대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 1745~1806년)는 46세 때 불교에 귀의했다.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수원 용주사에서 후불탱화 작업을 주관하면서다. 48세부터 51세 초까지 연풍현감으로 재직했을 당시 아들 양기를 얻은 후에는 불교에 더욱 깊이 빠져들며 신선과 고승,관음보살의 그림,즉 도석화(道釋畵)를 많이 그렸다.

단원을 비롯해 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관아재 조영석,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탄은 이정 등 조선시대 쟁쟁한 화가들이 그린 도석인물화 작품전이 열린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로 불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올 가을 정기 전시회 '도석인물화 특별전'(18일~11월1일)에는 조선시대 도석인물화의 형성과 변모,완성 과정을 훑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100여점이 한꺼번에 전시된다.

도석화는 중국 북송시대 성행한 도교와 불교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반은 종교적,반은 기복적인 의미를 지니는 회화 장르.한국에서도 불교가 득세하던 고려시대 및 도석 신앙이 민간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조선시대에 많이 제작됐다. 특히 영 · 정조시대 사회적 안정기를 거치면서 행복과 부귀 영화를 추구하는 사대부 출신들의 소장 수요가 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석화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은 역시 단원의 '낭원투도'.삼천갑자를 산다는 동방삭이 선도 복숭아를 세 번이나 훔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단원이 그린 동방삭의 모습은 중국화에서 기괴한 모습인 것과 달리 우리 주변의 평범한 얼굴로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단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남해 관음'은 특유의 갸름한 얼굴상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 단원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미인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나라 신선 장과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책을 읽는 모습을 묘사한 '과로도기',달마가 갈대를 꺾어 타고 앉아 졸면서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좌수도해',깎은 머리의 뒷 모습이 정갈한 노승이 연꽃과 연잎으로 장식한 구름에 앉아 하늘을 날아가는 '염불서승',도력이 높은 고승이 호랑이를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고승기호' 등의 작품에도 의식적인 불화와는 달리 단원의 자유롭고 활달한 미감이 배어있다.

겸재 절정기의 득의작 중 하나인 '사문탈사'를 비롯해 '송암복호''노자출관' 등도 바깥 나들이를 한다. 노자가 청우를 타고 서역으로 가는 함곡관을 나서는 데 이를 만류하는 관리의 모습을 담은 '노자출관'은 조선 전통의 감필기법을 살려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이 밖에 비구니가 기생을 맞이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잡아낸 '이승영기'를 비롯해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천민으로 나선 탁발승을 그린 '노상탁발',종소리를 들으며 절을 찾아가는 '문종심사' 등 신윤복의 대표작도 볼거리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조선시대 도석화는 오복 즉 장수(壽)와 부(富),건강과 편안함(康寧),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는 것(考終命) 같은 속세의 염원을 담고 있다"며 "정조의 총애를 받은 단원이 한국적인 도석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관람료 무료.(02)762-044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