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8일,미군은 남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공군에 명령을 내린다. 사이공 외곽의 트랑방에 적군이 침투했으니 즉각 공격하라는 것.전투기는 엉뚱하게도 아군과 숨어있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네이팜탄을 떨어뜨린다. 그 하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섭씨 3000도의 고열에 녹아내렸고,그 참혹함은 사진가 닉 우트가 찍어서 유명해진 '카메라를 향해 뛰어오는 벌거벗은 소녀'(킴 푹)의 사진으로 남았다.

과연 미군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신경과학자인 조나 레러는 《탁월한 결정의 비밀》에서 하루 수십 건의 결정을 내리는 우리가 한번쯤 궁금하게 여겼을 법한 결정의 메커니즘에 대해 풀어놓는다. 그 분석의 툴은 MRI(자기공명단층촬영 장치)의 등장으로 태동한 신경과학이다. 여기에 심리학과 경제학 이론까지 동원한다.

돌이켜 보자.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최선의 결정은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합리주의적 이성에 의해 내려진 것이었다. 감정은 이성의 하위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 선수가 방망이로 공을 때릴지 말지를 결정할 때도 이성의 분석에 의해 결정될까? 투수가 공을 던지면 대개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0.35초 걸린다. 타자가 근육을 움직여 방망이를 휘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25초.결국 타자는 약 0.1초 사이에 방망이를 휘둘러야 하는 시급한 상황인데 날아오는 야구공의 공기역학을 염두하며 합리적인 분석을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뇌신경과학의 연구 결과 이 때 신속한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은 바로 '감정 두뇌'라고 한다.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두뇌 부위가 수백만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정교하게 발전했고 매우 적은 양의 정보만으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 동물이 아닌 것이다.

나아가 뇌신경과학은 '행복감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 정도로만 알려진 도파민에도 새로운 지위를 부여한다. 도파민이 사랑의 감정에서부터 가장 혐오스러운 감정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감정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도파민은 한마디로 결정을 돕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뇌 속에서 도파민이 작용하는 경위를 살펴보면 감정은 눈에 띄지 않을 뿐 실제로는 엄청난 분석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사례로 걸프전 당시 순간적인 판단으로 아군의 전투기인지 적군의 미사일인지 구별해내 군인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라일리 소령의 일화를 들려준다. 레이더 신호를 포착한 소령이 아군의 전투기와 무언가 다른 점을 감지하자 그의 중뇌 어딘가에 위치한 도파민 신경세포가 흥분하기 시작해 예언 능력을 지니는 감정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주장처럼 만능해결사인 직관의 추종자가 되라는 발언을 하진 않는다. 다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결정해야 할 대상을 마음의 내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보기를 권고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두 가지 사고 양식을 각각 언제 사용할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매일 탁월한 결정의 과정에 서있는 최고경영자부터 자잘한 나날의 결정으로 갈등하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매우 든든한 결정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김기영 광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