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도원결의는 유비와 장비가 맺은 최초의 '내시균형'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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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와 게임이론 자오융 지음 | 허유영 옮김 | 한스미디어 | 432쪽 | 1만3500원
《삼국지와 게임이론》은 경영학의 게임이론을 삼국연의의 각 장면에 대입해 살펴보는 재미있는 책이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선택은 서로 상대방의 선택에 영향을 주게 되므로 결국은 양보와 타협을 거쳐 일정한 균형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모든 참가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의 조합을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이라고 한다.
예컨대 삼국연의의 첫장인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이렇게 볼 수 있다. 유비는 몰락한 가문 출신이지만 대의웅지를 품은 한(漢)제국 유씨(劉氏)의 종친.어지러운 천하에도 불구하고 28년을 허송세월한 유비의 입에서 한숨이 터질 때 장비와 만남이 이뤄진다.
장비는 도살과 요식업을 경영하면서 재부를 쌓은 인물.기본적으로 두 사람에게는 협력과 결별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열려 있다. 장비가 어느 선택을 하건 유비는 협력하는 것이 언제나 우월한 선택이다. 따라서 장비로서는 망설임 없이 협력을 선택한 유비와 협력해야만 얻는 것이 있다. 즉 유비가 지닌 정치적 자원과 장비의 경제적 기반이 결합하면 대업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데,이를 통해 유비는 정치적 포부를 이루고 장비는 반석같은 재부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의기투합,즉 협력이라는 선택은 이들의 조건에서 가장 탁월한 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 조합이 바로 '내시 균형'인데,이렇게 삼국지의 첫 장면부터 게임이론의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싸움은 유비-손권 연합군과 조조의 대결에만 눈을 빼앗기기 쉽지만 그런 큰 대결구도 아래 유비와 손권 사이에 또다른 전선이 펼쳐졌다. 동맹군끼리의 이익 챙기기 게임인데,결과는 동맹군 중 강자였던 손권이 조조의 대군과 맞서는 사이 약자였던 유비는 가만히 있으면서 자립의 기틀을 챙겼다. 영리한 돼지의 게임에서 큰 돼지인 손권에 비해 작은 돼지인 유비로서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적벽싸움의 '내시 균형'이었던 것이다.
삼국지 전체를 통해 위(魏)와 촉(蜀) 두 나라는 전투를 가장 많이 치렀다. 기간도 비교적 길었고 규모도 컸다. 그것은 수향(水鄕)의 나라인 오(吳)가 자신 없는 육전을 기피한 탓도 있다. 위,촉 양국이 그렇게 혈투를 하지 않으면 안됐던 것도 게임이론으로 설명된다. 위,촉 두 나라는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했다. 내가 아무리 평화전략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무력전략을 펼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두 나라에는 언제나 무력이 우월전략이었고,전쟁만이 유일한 내시균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두 나라가 빠졌다는 것인데,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근본원인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게임이론을 벗어나는 장면도 있다. 바로 삼국연의 최후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다(死孔明走生仲達)'는 대목이다. 여섯 차례에 걸친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은 언제나 선제공격으로 일시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일방이 자발적으로 철수함으로써 전투를 회피하는 양상으로 내시균형을 유지했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전투에서 철수하는 제갈량의 군대를 우세한 전력을 보유한 사마의가 쫓기는커녕 번번이 군사를 돌려 자신도 낙양으로 철수했다는 점이다. "나는 제갈량을 따라갈 수 없구나!"라는 이해할 수 없는 탄식과 함께.왜 그랬을까? 그 수수께끼는 내버려둬도 사그라질 촉의 수명을 당장 끊어놓는 것보다 위의 패권을 접수하겠다는 자신의 야망이 더 중요한 과업이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는 삼국연의의 주요장면 39개 대목을 게임이론으로 검토했다. 유비 집단을 '비우비(備羽飛)기업' 식으로 표현하는 비약도 있지만,중요한 장면마다 정사 삼국지의 원문을 인용,검토한 점을 더 높이 사도 좋을 듯하다. 2007년 나온 중국어판 제목은 '박혁삼국(博奕三國)'.중국에서는 게임이론(game theory)을 박혁론(博奕論)이라고 부른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