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34 · 사진)은 매년 너댓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배역을 맡았지만 팬들의 뇌리에는 '로맨틱가이'로 똬리를 틀고 있다. 2007년 화제의 방송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부드럽고 편안한 남자로 여성들을 사로잡은 후 멜로물에 잇달아 출연했다. 멜로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 이어 박찬옥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멜로 '파주'(29일 개봉)에서 그는 처제와 사랑을 나누는 형부 역할을 맡았다. 자극적인 치정극이 아니라 서로 다른 크기의 사랑으로 갈등과 번민하는 남녀의 얘기다.

"'파주'는 '해운대'나 '국가대표'처럼 흥행을 바라는 영화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 소중한 몇달간의 시간을 기꺼이 쏟아부을 수 있는 가치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출연작 중 가장 영화적인 작업이었고,어느 때보다 연기에 대해 고민도 많았습니다. "

이야기는 몇해 동안 인도 여행을 마치고 고향 파주로 돌아온 은모(서우)가 언니의 사망 원인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며 형부 김중식(이선균)이 자신 앞으로 보험금을 남겨놓았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에게 드리웠던 7년간의 세월을 추적한다.

"은모가 형부를 떠난 것은 형부에 대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고 어쩔줄 몰랐기 때문이죠.김중식은 과거사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요. 깊은 상처를 지닌 김중식의 감정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 표현해야 했으니,무게감이 컸습니다. "

극 중 두 주인공은 언제,어디서,왜 사랑하게 됐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모른다. 살다보니 차곡차곡 쌓여진 사랑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감정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에 걸맞게 영화 제목도 파주의 안개가 자주 끼는 특성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내가 죽은 뒤 처제와 형부가 사랑하니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종교적이라고 부를 만한 형부의 사랑을 처제는 이해하지 못해요. 사랑이 너무 커도 맺어지기 어려운 것이지요. "

그는 로맨스 영화 '사과''로맨틱아일랜드',방송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트리플' 등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배역이 작품 속에 묻히도록 진실한 연기를 펼치는 데 힘썼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 출신인 그는 2001년 뮤지컬 '록키호러쇼'로 데뷔한 이래 무수한 단역과 조역을 거치며 성장했다. 인기 배우가 된 요즘에도 출연 시간이 짧거나 개런티가 적다해도 역할이 마음에 들면 출연한다. 그는 "죽을 때 '배우'란 수식어가 붙기를 원한다"며 "인기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이 돋보이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유재혁/사진=정동헌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