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600만원 가까운 복지수당을 받는 가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 최근 한 광역자치단체장은 복지예산의 '퍼주기 식' 집행사례를 들려주면서 혀를 찼다. 그는 "정부 부처의 어떤 과(課)에서는 이런 명목으로,또 지방자치단체의 다른 과에서는 저런 명목으로 돈을 주고 있다"면서 "쏟아지는 복지예산을 주체 못해 집행에만 급급한 공무원들의 실적주의와 중복집행 등에 대한 검증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복지병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가고 있다. 중앙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복지예산 뿌리기에 나서면서 '눈먼 돈'을 타가려는 가짜 저소득층까지 읍 · 면 · 동 사무소를 찾고 있다. 복지예산은 늘어나는데 피부로 느끼는 복지체감도는 떨어지는 까닭이다. 잘못된 복지정책이 근로 동기를 상실하게 만든 20,30년 전 유럽의 복지병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다.



◆"해당되면 무조건 준다"

복지 담당 1~2명이 많은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돼있는 '깔때기'식 복지전달체계는 복지정책 난맥상의 진원지다. 늘어나는 복지예산을 집행하려다 보니 요건만 갖추면 갖다주는 식이다.

충남 A군에 거주하는 김모씨의 5인 가구는 얼마 전 각종 복지수당을 합쳐 590만원의 국고지원금을 받았다. 생계비 79만원,주거비 21만원,장애아동 수급비 20만원,미숙아 지원비 220만원,의료비긴급복지지원 200만원,양곡지원 4만1000원,TV수신료 및 주민세 면제 26만원,의료급여 26만원 등이다.

충남 B시의 박모씨(65)는 생계급여 32만원,의료급여 21만원,장애수당 14만원,기초노령연금 8만8000원,월동비 2만원 외에 양곡지원,가사간병서비스,연탄쿠폰 등 무려 15가지의 복지혜택을 받아 매월 329만원을 수령한다. 대구시 수성구 강모씨(80)의 6인 가족도 기초생활생계주거급여 136만여원,중증장애인 수당 32만원,기초노령연금 88만원 등 매월 260만원을 수령하고 있다.

충남도의 한 공무원은 "복지수당 항목이 워낙 많아 개인은 물론 가구별로 얼마를 받는지 정확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극빈계층이나 장애 가구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구에도 해당사항만 있으면 따져보지도 않고 각종 복지수당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예산 도둑 너무 많다"

경기도는 지난해 보육교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36개월 미만의 영유아를 1 대 1로 돌봐주면 월 40만원씩 지급하는 가정보육교사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 이용자는 261가구.그런데 월소득 1000만원인 대기업의 보험설계사와 연봉 6000만원 이상의 회사원 8명,의사 4명 등이 이 제도의 혜택을 누렸다. 이 제도를 이용한 가구 중 연봉 2400만원 이하는 23%에 불과했다. 제도시행에 급급해 이용자의 소득수준을 자격기준에 포함시키지 않은 결과다.

복지예산 도둑질의 신종수법은 차상위계층에 위장 편입하기.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 이내인 차상위계층을 위한 정부의 지원시책이 짭짤하기 때문에 20~30대 젊은 자영업자 부부들을 중심으로 소득 축소 및 은폐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친형이 운영하는 실내인테리어회사에 근무하는 최모씨(34 · 광주시 북구 운남동)는 자신의 월소득을 실제보다 3분의 1가량 낮춘 100만원으로 신고해 차상위계층에 편입했다. 최씨는 이후 7세 아들의 어린이집 비용 21만5000원 중 17만3000원을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다. 최씨는 또 입원비의 90%와 외래진료비의 85%를 지원받는 등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김모씨(73)는 지난 1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신청해 수당을 받아왔다. 김씨는 이번 달 금융재산조회 결과 1억원의 자산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그동안 지급된 수당을 환수당했다.

시행 1년6개월밖에 안 된 기초노령연금제도도 출발부터 삐걱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작년부터 올 6월까지 연금 부정수령으로 적발된 사례가 무려 4만9176건에 60억7869만원에 달했다.

예산만 늘리고 사후대책은 없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복지예산은 4배나 늘었다. 내년도 복지예산 규모도 81조398억원으로 올해(본예산)보다 8.6% 늘었다. 내년 총예산(291조8000억원)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27.8%)이다. 예산이 늘면서 정부 각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갖다쓰다 보니 복지사업 가짓수가 249개까지 늘었다. '숨어 있는' 복지예산도 적지 않다. 일자리 창출이나 고용유지 등의 명목으로 지원되는 정부 및 지자체의 각종 지원금도 '복지'라는 꼬리표만 안 붙어있지 사실상 복지성격을 띠는 준(準)복지사업인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예산만 확보했지 사후관리감독은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의 담당 공무원들은 한 사람이 얼마나 받아가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전시 H주민자치센터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복지부서에 새로 발령받은 후 각종 복지서비스 내용을 이해하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다. 수령자가 자진신고하지 않는 이상 부정수령 단속은 어림도 없다"고 털어놨다. 대구시 한 구청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부정수급률이 2,3%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전면조사를 해보면 5~1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예산을 관리 · 집행하는 공무원이 절대 부족한 것도 효율적 예산관리를 불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수원시 K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2명의 말단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이 3903명의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령연금 보육료 등을 관리하고 있다.

대전=백창현/광주=최성국/인천=김인완/부산=김태현

/대구=신경원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