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한국과 EU(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양쪽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좋은 협상이었습니다.이 협상은 앞으로 한·일,한·미,EU·아시아권 FTA 등 다양한 FTA를 연쇄적으로 불러올 것입니다.”

앙드레 사피르 벨기에자유대학(ULB) 경제학과 교수는 15일 브뤼셀의 크라운플라자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그는 “수출교역량 1위인 EU와 10위권인 한국이 FTA를 체결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며 “한·EU FTA가 각국의 FTA 욕구를 자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당장 일본 기업들은 한국이 부품·소재 수입국가를 EU로 다변화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한·일 FTA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EU 역시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들과 더 많은 FTA를 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한·미FTA 역시 기존안을 약간 고쳐서 결국 국회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사피르 교수는 이번 협상이 ‘균형 잡힌(balanced)’ 협상이었다고 말했다.인구 5000만명으로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은 EU라는 큰 시장에 접근권을 갖게 됐고,EU는 EU역내국가보다 보호수준이 다소 높았던 시장의 장벽을 걷었기 때문이다.막판까지 협상을 더디게 만들었던 관세환급 문제에 대해 그는 “유럽이 두려워한 것은 중국산 제품이 한국을 경유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었다”며 “관세환급을 유지하되 일종의 보호장치를 걸어둔 것은 한국기업과 유럽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대변하는 좋은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번 FTA가 단순히 경제·통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그간 미국과 깊은 관계를 가져 온 한국이 EU와 먼저 FTA를 체결하면서 정치적 협력관계를 다변화하게 됐다”는 얘기다.학생 교환 등 문화적 교류관계도 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FTA가 양 지역간 직접 투자를 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할 필요 없다고 했다.“관세장벽을 뚫기 위해 기업들이 설립한 현지 공장의 효용성은 다소 낮아지겠지만,전반적으로 교역량이 커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교류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다만 양자간 협정인 FTA가 지속적으로 체결되면서 다자간무역협정인 WTO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보였다.

사피르 교수는 브뤼셀의 거시경제·금융 싱크탱크인 브뤼겔(Bruegel)의 선임 연구원이다.2004년 유럽 경제성장 전략에 관한 유명한 연구보고서 ‘사피르 리포트’를 내는 등 유럽연합(EU)의 경제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를 ‘EU에 영향력이 강한 30인’ 중 하나로 뽑았다.

브뤼셀(벨기에)=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