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빨간 구두를 신은 대가로 발목을 잘라야만 했다

신성한 교회에 도발적인 빨간 구두를 신고갔으니 당연했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욕망은 금기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전족'처럼 특히 발과 구두는 에로티시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노골적인 유혹을 금지당한 탓에

치마 아래로 엿볼 수 있는 발이 섹스 어필의 도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살인적인 굽높이의 '킬힐'이 유행하는 것도 이런 심리의 표현이란 해석도 있다

다루기 어려운 멋진 남성도 지배할 수 있다는 여성의 자신감인 것이다

문제는 화려한 '킬힐'이 발을 편하게 해주지 못하듯이

좋은 덕목을 두루 갖춘 남성을 만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골드 미스들은 이런 사회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13일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레스토랑에서 골드미스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박신영 기자)=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추진하면서도 이런 주제에 응해주실 분이 나타나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목부터가 '섹스는 구두와 닮았다'잖아요.

▼이석경(우리투자증권 세일즈트레이딩 과장 · 35)=사실 주변 사람들이 말렸어요. 그런 자극적인 주제로 기사가 나가면 시집 못간다고요. (웃음) 그래도 나오기로 한 것은 '인맥'을 쌓고 싶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보다 확실히 그런 인맥을 만들어가는데 취약하더라고요.

▼조성연(프라자호텔 리모델링TF팀장 · 39)=저는 사명감보다는 과연 '골드 미스'라는 주제를 얼마만큼 신선하게 다룰 수 있을지 궁금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김경선(뮤지컬 배우 · 31)=저는 골드 미스의 문턱에 있어요. 앞으로 배우로서 커리어를 생각하면 당분간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렇다보니 골드 미스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고 싶었어요.

▼사회='골드 미스'라는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성연=처음부터 골드미스가 되기를 의도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직장 다니고 생활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삶의 또 다른 패턴이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생겨난 용어라고 봐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닌 데도 저출산,이혼 등 사회적 문제와 결부되면서 더욱 이슈화되는 것 같아요.

▼사회=출산과 결혼을 인생의 후순위로 미뤄두는 게 사실 사회적인 문제이긴 하죠.

▼이석경=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직장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대단한 야심을 갖고 일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제 할 일을 열심히 한 것뿐이죠.남자친구와의 관계는 헤어지면 남는 것이 없지만 직장은 열심히 하면 결과물이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른 거죠.일부러 후순위로 미룬 게 아니라 일로 얻는 성취감이 더 좋았을 뿐이죠.

▼사회=나이가 드는 것이 두렵지는 않나요? 사회 분위기상 특히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지잖아요.

▼김경선=나이로 치면 배우인 제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죠.하지만 저는 오히려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진,발전된 제 모습을 만나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도 그런 저를 응원하세요. 결혼해서 가정에 안주하기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제 분야에서 더욱 인정받기를 원하세요. 아마 이건 배우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요즘 어머니들은 딸이 시집가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직장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길 원하시죠.

▼사회=요즘 '골드 미스는 어머니가 만든다'는 말이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네요.

▼조성연=저도 30대 초반에는 독립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경제적으로는 독립할 수 있지만 결혼하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편하죠.아직 한국 사회 분위기상 결혼했을 때 여자보다는 남자가 편한 것이 사실이라고들 하죠.

▼사회=그렇다면 지금 혹은 이전의 남자친구들은 그런 여러분의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여러분의 발에 꼭 맞는 구두를 찾았나요?

▼조성연=글쎄요. 구두는 여자의 정복욕의 상징이라는데….남자를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인정해주고 싶을 뿐이죠.다만 현재 남자친구가 저보고 "나는 너의 액세서리라는 느낌이 들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자신이 저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니란 뜻이었을 거예요. 물론 그 사람은 제게 굉장히 소중해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연애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죠.삶에 있어서 연애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고나 할까요?

▼김경선=그렇다보니 처음부터 나를 인정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남자인지를 살피게 돼요. 내 성공을 위해선 화려한 구두보다 움직이기 편한 구두가 더 좋다고나 할까요. 경제적 의미보다는 마음으로 응원을 해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해요. 하지만 보편적으로 '괜찮다'고 인정받는 남자,혹은 조건이 괜찮은 남자는 그만큼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여자를 바라는 것 같아요.



▼사회=직장 안에서의 시선은 어떤가요?

▼이석경=부하 여직원들은 여자 과장을 참 싫어해요. (웃음) 남자 과장들은 예쁘게 봐주는데 여자 과장은 예전에 남녀차별이 확연할 때의 경험을 떠올려서인지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요.

▼조성연=그런 생각을 멀리해야 해요. 남자들이 관대하게 대해주는 것은 직장 내 여자동료를 경쟁 상대에서 이미 제쳐두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그것도 30대 초 · 중반까지예요. 승진할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지죠.

▼사회=승진에서 인맥 관리도 중요한 요소인데 여자들은 그 부분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요?

▼이석경=남자들은 보통 술,골프 등으로 인맥 관리를 하죠.중요한 점은 여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인맥을 관리하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남자랑 똑같이 술 마시고 사우나 가고 그런 식으로는 힘들어요.

▼조성연=그렇다보니 '등거리 인맥 관리'가 여성 직장인의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해요. 라인을 타지 않다보니 객관적인 관계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거죠.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임원 이상이 되려면 어느 정도 인맥을 구축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인생에서 배우자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얘긴가요?

▼김경선=결혼도 언젠가는 하겠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성공하는 데 더 집중하고 싶어요.

▼조성연=저도 결혼을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결혼만큼이나 제 인생에 대한 고민도 커요. 앞으로 직장생활은 길어야 10년일 텐데 임원이 되는 것도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잖아요. 평생의 할 일들을 지금의 남자친구와 많이 얘기해 보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없어요. 다만 은퇴하고 나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이석경=사실 30대 초반에는 결혼이 절대 목표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독신주의를 고집하지 않는 이상,제게 맞는 배우자를 찾는 것도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집 잘 가는 것 하나만을 인생 목표로 세워서도 안 되겠지만 좋은 남자를 찾고 싶다면 나 또한 누군가를 만나고 시간을 할애하고 정성을 쏟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세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박신영/사진=강은구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