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둘레는 무릇 4600보이니,도합 12리요. 성의 모양은 가로로 길게 비스듬하여 무르녹은 봄의 버들잎 형상 같으니,그것은 유천(柳川 · 팔달산 남쪽 작은 개울)이란 지명에서 취한 것이다. '(수원 화성 축조 후 지은 '화성기적비'(華城紀蹟碑) 비문)
경기도 수원의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팔달산을 끼고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화성은 성곽 길이만 5.7㎞로 마음먹고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짧게 잡아도 3시간,넉넉히 잡으면 4~5시간은 걸릴 정도로 크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화성을 이해하려면 정조와 다산 정약용이라는 조선 후기의 걸출한 인물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할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화성을 세웠다.
원래 사도세자가 묻혔던 한양 동쪽 양주 배봉산 자락이 영 마뜩찮았던 정조는 명당으로 알려진 수원으로 아버지를 다시 모시기로 했다. 2년9개월 만에 완성된 화성에는 효심에서 우러나온 정조의 강한 의지가 배어있다. 물론 새로운 도시를 세워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깔려있다.
축성이 결정된 후에는 다산 정약용의 활약이 눈부셨다. 다산은 조선과 중국의 건축술뿐 아니라 서양 과학기술까지 섭렵하며 1792년 계획안을 냈다. 다산의 안은 당시 상식선을 뛰어넘는 새롭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게 거중기라는 기구다. 도르래를 이용해 돌을 들어올리는 이 기계는 화성 축조에 큰 기여를 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이룩한 뛰어난 과학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화성 전체를 둘러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일단 행궁부터 시작해 보자.아버지의 능을 참배할 때 정조가 머무르기 위해 세운 행궁의 지금 모습은 대부분 복원된 것이다. 원래 모습이 상당히 남아 있는 건물은 낙남헌 정도다. 효성이 남달랐던 정조는 국사로 바쁜 중에도 부친의 능을 13차례 참배했으며 그 기간에는 행궁에 기거했다. 그래서 지방의 궁궐이라고는 해도 규모가 큰 편이다.
정조는 수원에서의 노후를 꿈꾸며 행궁에 노래당(老來堂)을 지었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인기 드라마 '대장금'도 행궁에서 촬영됐다. 지금도 세트장 일부가 남아 있다. 노래당 앞 우물도 드라마 세트다. 입구를 막아놔도 사람들이 기어이 한번씩 뚜껑을 밀어보며 지나간다.
뒤주가 몇 개 있어 사도세자가 최후에 맞닥뜨렸을 절박한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다. 덩치가 큰 사람이라면 좁은 뒤주에 들어갈 때부터 숨이 막힐 것 같다. 어린 소나무들을 지나 후원으로 올라가면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여기에서는 행궁이 한눈에 보인다. 행궁을 본 후에는 화성을 따라 걷는다. 행궁 밖으로 나와 옆 주차장으로 빠져 들어가면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5분만 걸어올라가면 서장대(군사 지휘소)가 나온다. 행궁과 수원시의 모습이 확 펼쳐져 전망이 좋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걷는 걸 좋아한다면 다산의 꼼꼼한 계획 아래 유려하게 쌓아올린 성곽을 구경하며 느릿느릿 둘러보자.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다면 서장대 아래 팔달산 매표소에서 출발해 연무대까지 30분 정도 운행되는 화성열차를 이용해도 된다. 연무대에서 팔달산까지 역방향으로 가는 열차도 있다.
화성 성곽은 전체적으로 살짝 이지러진 타원형이기 때문에 연무대에서 내려 성곽을 좀 더 둘러봐도 괜찮다.
수원 화성 성곽은 수려하다. 견고하면서도 우아하다. 당시 재주 있는 장인 1800여명이 축조에 동원된 성곽답다. 그때 정조는 환약을 내리고 좋은 음식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화성에는 팔달문,창룡문,장안문,화서문 등 4대문이 있다. 남북의 정문인 팔달문과 장안문의 위용이 눈길을 끈다. 봉돈(비상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시설),치성(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성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한 구조물),공심돈(적을 살피는 망루의 일종),암문(군수물자를 성 안으로 공급하는 곳) 등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실용성을 감안해 만들었을 화성이 이제는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미색을 뽐낸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찾아 가는길
화성행궁으로 가려면 서울에서 수원공설운동장 방향으로 가다가 창룡문(동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거나,수원공설운동장에서 우회전해 장안문(북문)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수원 IC에서 좌회전해 42번 국도를 타다가 팔달문(남문) 방향에서 우회전하거나,동수원 IC에서 43번 국도를 이용해 창룡문(동문)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잠실역이나 강남역에서 화성행궁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타거나 동서울터미널,사당역에서 버스를 탄 뒤 환승해야 한다.
수원화성(성곽) 관람료는 어른 1000원,청소년 및 군인 700원,어린이 500원이다. 화성행궁은 어른 1500원,청소년 및 군인 1000원,어린이 700원.화성열차는 어른 1500원,청소년 1100원,어린이 700원이다. 화성열차 운행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10분(팔달산 출발),5시20분(연무대 출발)까지다. 자세한 내용은 수원화성운영재단 홈페이지(hs.suwon.ne.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