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를 잘못 택한 것일까. 저녁 식사 자리에 마주앉은 맥캘란 증류소의 조지 크레이그 부공장장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를 꼭 닮았다는 말에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입을 닫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숙적 잉글랜드가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오른 반면 스코틀랜드는 예선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축구 얘기를,그것도 잉글랜드팀 주전 선수를 닮았다고 했으니….

싱글몰트 위스키에는 이런 스코틀랜드인의 고집과 자존심이 묻어난다. 위스키 시장의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결코 섞이지 않은 맛과 향을 지닌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싱글몰트의 성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위스키 증류소(distillery) 중 3분의 2 정도가 하이랜드 지역을 가로질러 북해로 흐르는 스페이강 주변에 몰려있다. 이 지역을 '스페이사이드(Speyside)'라고 하는데 맥캘란 외에도 글렌피딕,더글렌리벳과 같은 명품 싱글몰트 위스키의 증류소가 이웃하듯 자리잡고 있다.

모든 명주(名酒) 의 고향이 그러하듯 스페이 사이드는 좋은 위스키가 탄생할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한 깨끗한 물과 원료인 좋은 보리,여기에 수백년간 위스키를 만들어 온 기술과 최고를 고집하는 장인정신에 이르기까지.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생산된 싱글몰트라고 해서 맛과 향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그레인 위스키와의 '배합 비율'에 따라 맛과 향이 차이가 나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달리 싱글몰트 위스키는 보리의 품종,증류방식,보관하는 오크통에 따라 제품마다 훨씬 다양한 맛과 향을 내게 된다.

◆1년에 600만병은 천사의 몫

싱글몰트 위스키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핵심은 숙성과정이며,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오크통이다. 오크통은 스페인산 셰리와인을 숙성시킨 통이나 미국산 버번을 숙성시킨 통 등을 사용한다. 맥캘란의 경우 팔로미노라는 청포도 품종을 사용해 발효시킨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셰리와인을 3년간 숙성시킨 스페인산 셰리 오크통을 주로 사용한다. 다른 오크통에 비해 가격이 다섯 배 가까이 비싼 데다 생산량도 한정돼 있어 스코틀랜드에서도 최고급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데만 사용된다.

몰트를 증류한 원액은 최소 3년간 오크통에 숙성시켜야 비로소 위스키라 불릴 수 있는데 대부분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10년 이상의 숙성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최초 알코올 도수 70도 정도였던 원액은 위스키의 자연적인 증발과 함께 알코올 도수가 매년 1도가량 낮아지게 된다. 해마다 1.5~2% 정도의 위스키가 증발되며 이렇게 날아간 술을 이곳 사람들은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부른다. "25년산 정도의 싱글몰트 위스키라면 천사들과 절반 정도씩 나눠 마시는 셈인데 스페이사이드에서만 1년에 600만병 분량의 위스키가 이렇게 사라집니다. "(데이비드 콕스 맥캘란 이사)

◆튤립 모양의 전용잔이 제격

튤립 모양의 싱글몰트 위스키 전용잔은 향을 잔 입구에 모아줘 싱글몰트 특유의 향을 음미하기에 좋다. 전용잔이 없다면 스트레이트 잔보다는 온더락 잔에 위스키만 채워 마실 것을 권한다. 알코올 도수에 거부감이 있다면 차가운 물을 섞어 마시되 물과 위스키 비율을 1 대 1 정도로 하는 것이 맛과 향을 느끼는 데 가장 좋다. 얼음을 넣어 온더락으로 마실 땐 통얼음(둥글게 하나로 이루어진 큰 얼음)이 가장 좋지만,통얼음을 만들 수 있는 아이스볼 머신은 국내에 신라호텔 라이브러리바와 청담동 커피바 K 등 2곳밖에 없다고 한다. 얼음을 잘게 갈아 넣거나 각얼음을 사용해도 큰 무리없이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 단,맛과 향이 너무 강해 폭탄주로는 맞지 않는다.

◆싱글몰트 / 그레인 / 블렌디드 위스키


스카치 위스키는 원료와 제조방법에 따라 몰트,그레인 위스키,블렌디드 위스키 등으로 나뉜다. 몰트는 100% 보리(맥아) 원료로 만든 위스키로,이 중 다른 증류소의 원액을 섞지 않고 한 증류소에서 생산된 원액만으로 제품화한 것이 싱글몰트다. 일반적으로 몰트 위스키라고 하면 싱글몰트 위스키를 의미한다. 그레인 위스키는 옥수수,호밀 등 다양한 곡물을 증류한 것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몰트 위스키에 비해 맛과 향이 떨어져 별도로 제품화 되지 못하고 블렌디드 위스키 제조를 위해서만 사용된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대량생산된 그레인 위스키에 소량의 몰트 위스키를 혼합한 것으로 전 세계에 판매되는 스카치 위스키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이사이드(스코틀랜드)=김정태 기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