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의 경영 주도권을 둘러싼 산업은행과 GM의 기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양측이 노골적인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GM대우는 16일 만기가 돌아온 산은 대출금 1258억원을 연장 요청 없이 갚았다. 산은 관계자는 "이날 오후 3시 타행 송금을 통해 이자와 함께 대출 원금이 상환됐다"고 확인했다. GM대우 라이선스 인정, 최소 5년간 생산물량 보장 등 산은의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달부터 여신회수에 들어가겠다는 엄포에 맞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GM으로서는 산은의 유동성 지원이나 증자 참여 없이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쌍용자동차에서 손을 뗀 상하이자동차가 GM인디아의 지분 일부를 인수,GM과 손잡고 인도 상용차 시장에 진출하기로 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기 위한 GM의 다각적인 포석도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GM대우의 이날 상환을 감정적인 조치로 보고 있다. 비록 만기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주채권은행과의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한데도 아무 말 없이 빚을 갚은 것은 산은에 불쾌감을 표시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 채권단과 맺은 대출약정에 따르면 GM은 2011년 10월까지 1조3762억원의 한도대출(credit line)을,올해 10월까지 9435억원의 기한대출(term loan)을 쓸 수 있다. 이날 상환으로 GM은 한도대출을 제외한 기한대출은 전액 갚았으며 향후 2년 동안은 국내 은행으로부터 채무상환을 요구받지 않게 된다. 산은 관계자는 "연말까지 선물환 결제를 포함해 GM대우가 자체 유동성으로 자금을 꾸려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GM이 다급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내년 이후 자금사정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선물환 손실로 GM대우의 자본여력이 바닥이 난 데다 부채비율도 700%가 넘어 신규 대출은 불가능하다. 주력시장인 북미에서 GM의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급감해 수출비중이 80% 이상인 GM대우로서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닉 라일리 GM해외담당 사장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재무상태는 올해 초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추가 자금 지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GM대우는 일단 21일 예정된 증자를 통해 GM에서 2500억원을 확보하게 된다. GM대우 지분은 GM이 50.90%,산은 27.97%,스즈키 11.24%,상하이자동차가 9.89%를 갖고 있다. 산은이 증자에 불참하겠지만 GM이 실권되는 주식을 떠안거나 제3자 배정도 어려워 증자는 GM의 단독참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협상 전망과 관련,"방향만 다를 뿐 칼자루는 서로 쥐고 있다"며 "GM은 GM대우의 미래를,산은은 현재를 쥐고 협상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심기/오광진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