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학교 2학년이 치르게 될 2011학년도 외국어고 입시 제도가 크게 바뀔 전망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외고 폐지론과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전환론이 불거지면서 서울지역 외고들이 영어듣기시험 폐지 등 입시제도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원호 대원외고 교장은 18일 "내년(2011학년도) 입시부터 영어듣기 시험을 없애고 내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최 교장은 또 "서울대처럼 서울지역 25개 자치구에서 학생을 골고루 뽑는 지역균형선발제와 정원의 35%는 외국어 · 예체능 우수자,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뽑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화외고는 입시전형에서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입학사정관제'로 전환하는 방안과 '내신+기본 영어실력(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자격시험으로 바뀔 경우 점수로 우열을 가리지 않고 합격 혹은 불합격만 가린다.

명덕외고 맹강렬 교장은 "어학 영재를 선발한다면서 어학 측정도 해보지 않고 학생을 뽑는 것은 설립 목적과도 배치된다"며 영어듣기 시험 폐지에는 반대하면서도 난이도는 조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일외고와 한영외고도 사교육을 줄이는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지역 외고들이 이처럼 입시개선안 마련에 들어간 것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외고 폐지론이 논의되고 있어서다. 여야 의원들은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고가 어학영재 양성이라는 설립목적에서 벗어나 있고,고액 사교육을 유발하는 대입 명문고로 변질됐다며 대안을 요구했다. 특히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5일 외고를 자율고로 전환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이주호 교과부 제1차관도 "외고만 명문고인 시대가 아니며 자율형 사립고 같은 다양한 학교로 선택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자율형 사립고) 전환 논의에 여의도에서 나서는 건 고마운 일"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야당보다는 여당 의원들이 외고의 입시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민 · 중산층 살리기'를 위해 사교육비 경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고입 · 대입 제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개정을 통한 외고의 자율고 전환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외고들은 입시제도를 손질할 수는 있어도 폐지나 자율고 전환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최 교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 고교 중 13위로 평가한 대원외고를 키우는 데 20년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학교를 없애려는 것이냐"며 '외고 폐지론'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택휘 한영외고 교장도 "글로벌 리더를 육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고의 폐지나 자율고 전환은 안 된다"며 "외국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외고를 통역관 키우는 곳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외고들은 다음 달 18일 열리는 외고 교장협의회 총회에 앞서 지역 모임 등을 통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김선동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3년간 외고의 전입 · 전출현황을 비교해본 결과 수도권 외고는 전출에 비해 전입이 2007년 49명,2008년 81명,2009년 9월 83명 더 많았으나 비수도권은 반대로 전출이 각각 75명,97명,102명 등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수도권 집중현상이 외고에서도 나타난 것은 외고가 특수목적과는 다른 입시명문고로 변질된 때문"이라며 "외고를 특목고의 명단에서 삭제해 주는 것이 사교육을 줄이는 최선의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웅/이준혁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