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세계에서도 낮다. 10%에 불과하다. 노동자 열 명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전투력은 세계 최강이다. 파업 일수나 경제 손실 외에 파업 행태나 강도에 있어서도 비교를 불허한다. 총을 쏴대는 것을 제외하면 인류가 고안한 거의 모든 싸움 수단을 총동원한다고 해야 할 정도다. 낮은 조직률과 최강 전투력의 이 기묘한 결합이야말로 한국 노동시장의 본질이다. 이 전도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노동시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으로부터 노동시장의 온갖 악(惡)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의 노조는 대기업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그런 직장의 소위 귀족 노동자들이 꽉 잡고 있다. 노동자들을 복지수준에 따라 긴 줄을 세우면 가장 선두에 있는 최종 조립라인의 노동자들이 노조운동의 주체다. 이들은 가치 사슬의 병목 부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파업의 효과가 증폭된다. 병목만 틀어막으면 해당 산업 전체가 마비된다. 상류에서의 파업 비용은 가치사슬을 따라 아래로 흘러 내린다. 생산성에서 유리된 최종 조립 업체의 고임금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생산성보다 더 받으니 이런 꿀 맛도 없다. 그러니 파업의 유혹은 더욱 강해지고 악순환 기계는 돌아간다. 임금은 당연히 생산성의 결과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다. 주먹의 크기로 결정된다.

바로 이 때문에 노동시장도 점차 이중구조로 짜여진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는 그런 구조의 결과다. 정규직이며 조직 노동자들에 의한, 비정규직이며 비조직인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 구조는 이렇게 완성된다. 그래서 가치 사슬의 아랫부분에서는 비명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도 못하고 고혈을 빨린다. 파일럿들이 파업을 벌이면 엉뚱하게도 계약직 스튜어디스나 납품업체 직원들이 쫄쫄 굶게 되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강력한 대기업 노조가 막강한 전투력으로 두자리 숫자로 임금을 올릴 때마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더욱 얄팍해진 월급봉투를 손에 쥐게 된다. 야만적인 노동시장은 이렇게 완성된다. 정말 비열한 구조다. 여기에 교사 공무원 공기업 등 직장에서 잘릴 염려도 없고 연금도 보장되는 그런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 운동의 주력으로 동참한다.

신의 직장에서는 작은 신들끼리 노조를 꾸려간다.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단호히 "귀족 노조가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착취한다"고 말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회적 약자라는 말은 그렇게 공중에 뜨고 말았다.

논란이 많은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한국 직업 노동 운동가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증거다. 일 안하고 월급받고, 차량과 유지비까지 회사에서 제공받고, 승진은 먼저하고, 회사를 떠나 상급단체로 가도 월급은 계속 받아챙기는 이런 희한한 일을 양대 노총의 간부들이 버젓이 엔조이해온 것이다. 13년이나 연기해왔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을 이제는 원칙대로 적용하자는 것인데 이를 총파업으로 저지하겠다는 것이니 세계 최강의 전투력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광이다. 힘 없는 중소기업의 노동운동이 약화된다는 걱정을 턱 하니 명분의 앞머리에 갖다 놓는 것은 악어의 눈물이요 위선의 촛불 집회보다 더욱 위선적이다.

국가를 엎어버리자며 세계 노동 운동의 횃불을 자처하는 직업 운동가들이 일도 안하고 꼬박꼬박 월급받는 것을 모른 척하라며 떼를 쓰는 것은 얼굴이 붉어질 일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어디 전임자 한두 명인 그런 작은 회사들이던가. 전임자 숫자만도 100명이 넘고 대의원만 되어도 현장의 신분이 달라지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그런 프로 운동가들이 문제인 것이다. 기만과 허위로 타올랐던 촛불집회가 좌파 몰락의 길을 재촉하였듯이 그런 비열한 길을 걸어온 노동 운동도 기어이 종말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