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19일 산업은행의 도움 없이 독자적인 자구계획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동부메탈을 헐값에 매각할 수 없다는 최종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시장가격 이상을 인정해주기 어렵다는 산은의 최후통첩에 김준기 회장의 사재 출연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면서 시장의 유동성 우려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동부,반도체사업 성공 위한 '배수의 진'

김준기 회장의 사재 출연과 함께 동부하이텍도 반도체 사업을 제외한 사업부문을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하는 등 반도체 사업 성공을 위한 배수의 진을 친 것으로 보인다. 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김 회장의 고민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동부하이텍은 반도체 경기 악화에 따른 매출 감소와 1조900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 부담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중 채권단의 신디케이트론은 1조2000억원으로 동부는 2007년 말 만기를 2012년 말까지 5년간 연장하는 대신 올해 말까지 9000억원을 마련하기로 채권단과 약정했다. 현재까지 동부가 달성한 자구안 규모는 4300억원으로 연말까지 4700억원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

동부는 일단 연말까지 김 회장이 출연한 3500억원과 보유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1200억원을 더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빠른 시일 내에 동부메탈의 상장을 추진하고 동부하이텍의 유화와 농업 부문을 분사한 뒤 이를 매각하기로 했다.

동부는 합금철 회사인 동부메탈이 약 8000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내다봤지만 산은은 4000억원 선을 고집하는 등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해왔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자 산은은 지난 8월 동부 측이 추가로 담보를 제공한 뒤 추후 시장가격 변동에 따른 차액을 정산하는 '언 아웃(earn-out)' 방식을 제시,협상 진전을 시도했으나 또 다시 담보평가에 대한 가격차로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동부 관계자는 "3~5년의 단기 수익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IB(투자은행)의 특성과 중장기 성장을 도모하는 기업 경영 본질이 상호배치할 수 있어 보다 확실한 구조조정 방법을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자구안 발표 직후 동부하이텍 주가가 상한가(7380원)에 마감하는 등 시장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산은,PEF 통한 구조조정 차질 예상


산은은 일단 대기업 총수의 사재 출연이라는 점에서 동부 측의 자구계획안을 일정 부분 평가하는 분위기다. 대주주로서 당연한 역할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산은이 책정한 동부메탈 가격에 가까운 자금을 선뜻 내놓은 것은 그만큼 동부하이텍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버티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사모펀드(PEF)를 통한 대기업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었다는 점에서 산은도 적지 않은 부담을 지게 됐다. 지난 6개월여를 끌어온 동부메탈 인수 협상이 실패로 끝났고,산은 주도의 PEF를 통해 대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삼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좌초됐다.

뿐만 아니라 동부그룹의 자구안이 성공할 경우 동부메탈 헐값 매각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실패로 끝난다면 주채권은행으로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래저래 부담이다. 산은은 동부가 밝힌 자구계획안 실현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최종 결정권자인 김 회장이 잘 판단했으리라고 본다"며 "연말까지 달성하기로 한 자구계획의 성공 여부에 따라 추가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김현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