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세종시 논란에 대해 최근 "정부는 공약뿐 아니라 법률까지 만들어 놓고 이 약속을 뒤집으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약속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권은 부도덕한 정권"이라며 공격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겠다고 하자 야당이 한목소리로 공격하고 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국민적 신뢰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옳은 얘기다. 하지만 약속 위반을 밥먹듯 하는 정치인들이 일제히 '약속'을 명분으로 내건 건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9일 한국행정학회가 개최한 세종시 건설방향에 대한 세미나에서 전영평 대구대 교수는 "정책과 관련된 법(세종시 특별법)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종시 건설은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기에 믿을 수 없고,실패해도 책임질 사람도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세종시는 정부의 효율성이나 국토의 균형발전과는 별 상관없이 충청도 표를 의식한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이 그렇고,그 후에 여야가 합의한 정부 부처(9부2처2청) 이전을 골자로 하는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충청도 표를 의식한 합의였다.

특히 "정부가 충청권을 속이는 처사를 한다면 저항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한 자유선진당의 이 총재는 2002년 대선 후보시절 충청도로의 수도이전을 끝까지 반대했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세종시 건설 수정은 대국민 약속을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지만 여자는 오지 않았다. 그는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 끝내 다리를 끌어안고 죽었다고 한다.

미생의 신의에 대해 장자(莊子)는 그의 어리석음과 융통성 없음을 개탄했다고 한다. 약속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충청도민이 원하는 명품도시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