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정부조직 개편에서 화려하게 부상한 부처 중 하나는 지식경제부다. 과거 정통부의 정보산업(IT) 영역이 이쪽으로 넘어왔고,연구개발예산도 교육과학기술부를 능가할 정도다. 부처 명칭도 '지식경제'여서 미래지향적 이미지까지 덤으로 얹혀졌다. 그런 지경부는 지금 얼마나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최경환 장관이 취임하자 지경부에 긴장감이 감도는 눈치다. 그는 밖으로는 지경부가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하고,안으로는 연구개발투자가 제대로 쓰이고 있느냐며 연일 질타한다. 뒤집어 말하면 지경부가 지금까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 왔다는 것이고,연구개발예산이나 나눠주는 재미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이다.

지경부를 보는 외부 시각이 최 장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문제는 가볍지 않다. 혹자는 벌써부터 다음 번 정부조직 개편에서는 그 첫째 대상이 지경부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경부는 이명박 정부 들어 IT산업계의 비전 상실 우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미래기획위원회가 IT산업 총괄부처인 양 나서고,대통령 IT특보가 만들어진 것이 이를 말해준다.

지경부는 신성장동력을 들고 나왔지만 이를 주도하는 데도 한계에 부딪친 양상이다. 기획재정부가 신성장동력 산업 발굴을 총괄할 '신성장정책국'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렇다.

녹색성장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던진 '저탄소,녹색성장'과 산업계 현실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아내야 할 부처는 지경부다. 그러나 전면에 나선 청와대 녹색성장위원회나 환경부와 달리 지경부는 이도저도 아닌,어정쩡한 모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국제유가가 한창 치솟을 때 지경부는 에너지 · 자원대책으로 넘길 수 있었고,세계경제 위기로 수출이 급락할 때는 비상국면의 무역대책으로 모든 게 가려질 수 있었다. 이 모두 과거 산자부가 하던 일들이다. 앞으로 지경부는 뭘 보여줄 것인가.

최경환 장관은 연구개발투자에 대해 '칸막이' '나눠먹기' '눈먼 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 등의 표현들로 강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시스템에서 오는 것인지,아니면 방향을 상실한 탓인지는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지경부가 단지 연구개발(R&D)부처가 되겠다면 존재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럴 바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차라리 합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 연구개발투자를 하는지 그 문제의식과 목적을 '산업'과 '기업'에서 명확히 찾아내지 못하면 지경부는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성장원천을 찾아야 한다고 나섰지만,아직도 그 방향을 명확히 못 잡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됐어도 앞으로 우리 산업이 어디로 가야 할지,그 혼돈과 불확실성은 외환위기에 비할 바 아니다. 수평적으로도,수직적으로도 산업 내 · 외부의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몇 년 내 산업의 대(大)재편이 일어나고,새로운 대(大)경쟁의 시대가 올 것 같다고 말한다. 지경부는 이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이런 이슈에 지경부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면 정말 존폐의 기로에 설지도 모른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