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에서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한 가지는 사회복지정책의 시행이다. 사회복지문제는 시장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만큼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예산에서 사회보장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05년 기준으로 유럽대륙의 복지국가들은 42%,영미권은 29%를 각각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은 12%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낮은 수치는 과거 정부가 경제개발에 치중하여 사회복지사업을 영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에는 28%로 책정돼 조만간 영미권의 수준에는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먼저 재산권 보호가 잘 되어야 한다. 재산권 보호가 부실한 시장경제에서는 사회복지 수혜자들의 상당수가 부당하게 재산권을 유린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시장경쟁 패배를 수긍할 리 없고 복지혜택을 고마워할 리도 없다. 재산권만 제대로 보호받았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히 생활할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어 놓고 복지혜택을 제공한다면 그 사회복지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정책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시장은 스스로 사회복지 정책목표를 시행하지 못하므로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정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결국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거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방식이 시장신호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시장경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예컨대 번영하는 기업에서 돈을 거두어 어려운 기업들을 도와주는 정책은 일종의 사회복지정책이다. 잘 나가는 산업에서 돈을 거두어 어려운 산업을 도와주자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의 돈을 거두어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도와주고 번영하는 제조업의 돈으로 어려운 농업을 살리자는 발상은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한다.

재산권 보호가 탄탄한 시장경제에서 기업과 산업이 번영하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업과 산업은 몰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다. 기업이 망하는 까닭은 고객들이 그 제품을 외면하거나 벌어들인 돈을 딴 곳에 탕진하기 때문이다. 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는 이유는 더 품질 좋고 값이 싼 제품을 만들어 내는 신흥 산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장은 사회적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과 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킴으로써 사업을 접도록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사회복지정책이 잘 나가는 기업과 산업의 돈을 거두어 퇴출해야 할 사업이 연명하도록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반시장적 사회복지정책은 자원낭비를 조장하여 사회전체의 소득을 떨어뜨리고 복지정책의 재원까지 고갈시킬 것이다. 몰락하는 기업과 산업들은 몰락하도록 두고 그 종사원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사회복지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