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가지 '다품종 신화' 비결
기자가 "생산품이 너무 다양해 3M이 어떤 기업인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하자 그는 "핵심 기술을 토대로 자유롭게 연구하고 개발해나갈 뿐"이라고 대답했다. 동일한 기술로 어떤 직원은 필름을 개발하고 다른 직원은 접착테이프를 개발하는 자유로운 풍토가 이런 3M 제품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지시 없이도 자유롭게 연구
3M의 원래 명칭은 미네소타 채광공업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이다. 전 세계 60여개국에 지사를 두고 6만가지가 넘는 제품을 팔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 1902년 광업회사로 출발한 이 기업의 기원을 유추해내기는 쉽지 않다. 광업회사에서 접착테이프 등 생활소재를 만드는 기업으로,다시 필름 등 광학소재를 만드는 기업으로 혁신을 거듭해온 결과다. 100년을 넘게 이어온 이 회사의 혁신 비결은 간단하다. 직원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혹시 실수해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며 다시 기회를 주는 기업문화 덕분이다.
3M의 '15% 규칙'은 열린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연구 · 개발 부서의 직원들이 근무시간의 15%를 직무와 무관한 새로운 기술이나 신제품을 구상하는 데 쓰도록 한 제도다. 이 규칙 덕분에 스미스 박사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지붕 소재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물론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해보라는 경영진의 지시와 승인은 받지 않았다.
스미스 박사는 "회사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영진의 지시를 어기고 개발한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다"며 "혁신은 직원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주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패엔 관대,성공은 보상
직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더욱 북돋워주는 것은 실패에 대한 관대함이다. 조지 버클리 회장은 실패를 보장(?)하거나 기대한다. 한 부서에 2년은 있어야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이하의 근무기간에선 발령을 내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실패는 실패 자체가 아닌,성공에 이르기 위한 필수과정인 셈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 직원들을 위해 '실패 파티'까지 열어줄 정도다. 샌드라 토카치 재능계발 담당 부사장은 "전 임직원이 실수를 반복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에 관대한 반면 성공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듬뿍 준다. 매년 성과가 가장 높은 직원 20명을 선발해 4일간의 휴가를 주고 가족과 함께 회사 인근에 있는 리조트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연구 · 개발 부서의 직원에 대해서는 '이중 사다리 시스템(dual ladder system)'이라는 별도 승진 및 성과보상 시스템을 적용한다. 본인이 원할 경우 경영진 코스로 올라가지 않고 연구원으로 남아 근무할 수 있다. 최근 삼성이 도입한 제도다. 뛰어난 성과를 낸 연구원은 최고경영자(CEO) 이상의 연봉도 받는다.
◆타 부서 파견 요청하면 즉시 발령
자율성 보장이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자율적인 활동을 조직의 성과로 극대화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부서 간 협력이다. 부서 간 장벽이 없는 조직문화가 '3M의 비밀병기'라는 사실을 아는 분석가는 흔치 않다. 만약 한 직원이 본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타 부서에 협조를 요청하면 해당 부서에서는 바로 다음 날 관련 직원을 요청 부서로 발령내기도 한다. 재클린 베리 홍보담당 부장은 "혁신을 이루기 위한 핵심은 부서 간 인력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부서 간 장벽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한 차례씩 테크니컬포럼(technical forum)을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전 세계에서 9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참석해 각 부서에서 진행 중인 일에 대해 발표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각 부서가 서로 업무를 이해할 수 있고 직원들의 친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부서 간 협력은 인사평가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혁신적인 기술을 얼마나 개발했는지와 함께 그 기술을 얼마나 타 부서에 전파시키고 협력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토카치 부사장은 "부서 간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도 있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인트폴(미국)=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