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 자산유리 대표는 1990년 1월3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공장이 불에 타버린 것이다. 화마에 훼손된 기계를 걸레로 닦고 기름칠을 새로 해가며 보름 만에 간신히 복구했다. 지붕 덮개가 없어 찬바람이 몰아치고 바닥은 타고 남은 재로 새까맣게 변한 상황에서 그는 다시 거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월30일 납품대금을 떼이면서 부도를 맞았다. 이 때부터 그의 공장생활이 시작됐다. 갈아입을 옷 몇벌을 챙겨 공장으로 들어간 그는 창고 한켠에서 먹고 자며 재기에 나섰다. 그 결과 법원에서 화의인가를 받고 3년 뒤인 2001년 7월 화의종결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이후 그는 자산유리를 국내 거울시장 점유율 45%의 1위 업체로 키워냈다. 지금은 고층 건물 외장재인 강화유리와 복층유리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가업 승계를 통한 성공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큰아들(이경수 상무)에게 '3대 거울 가업'의 경영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대를 이어 성공한 젊은 부자들》은 이처럼 2~3대에 걸쳐 명품기업을 만든 39개 회사의 특별한 경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전국을 누비며 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의 성공 스토리를 현장 인터뷰와 함께 전한다. 장수기업을 이끌어가는 대표들의 자질과 성품,경영철학,숨겨진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앞부분에는 사양 업종을 딛고 일어선 기업들의 얘기가 나온다. 구두약의 대명사로 꼽히는 말표산업,청와대 목창호를 만드는 성남기업 등 남들이 기피하는 업종을 묵묵히 이어가며 성공한 이들의 경영 노하우가 돋보인다. 장인정신 하나로 46년간 33억개의 볼펜을 만든 모나미,국내 욕실문화를 바꾼 로얄&컴퍼니 등의 경영 방식도 눈길을 끈다.

부도와 화마 등의 악조건 속에서 기업을 되살린 사연은 눈물겹다. 자산유리를 비롯해 색채선별기 제작업체인 대원지에스아이 등 최악의 상황을 정면승부로 이겨낸 얘기가 생생하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예산옹기 등 장수기업들의 성장 동력과 유리절단기를 만드는 금성다이아몬드,엑스레이 진단기를 생산하는 리스템 등 해외에서 입지를 굳힌 기업들의 경영전략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들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를 이룬 게 아니다. 도전정신과 믿음,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고,부도 위기의 회사를 살려내기도 했다. 또 선배 경영자들의 정신과 기술을 현실에 접목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창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런 점에서 '부의 대물림'이라는 편견을 넘어 '대를 잇는 가업'의 새로운 경영자상을 보여준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