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동포 무역인 10만 길러 모국 수출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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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경제인대회' 개최 고석화 해외한인무역協 회장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내 돈 써가며 행사를 치러도 행복합니다. "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제14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열고 있는 고석화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 회장(65 · 사진)은 "모국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한인경제인대회'는 세계 한인 무역 · 경제인들이 모국 경제발전을 위해 마련한 교류의 장이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대회에는 32개국에서 활동 중인 800여명의 한인 무역상과 국내 500여명의 정부 · 기업체 관계자들이 참가,해외시장 진출과 판로를 뚫는다. 투자환경 설명회,청년인력 해외취업 등의 상담도 이뤄진다. 옥타 측은 이번 대회에서 22일 현재 1억달러 규모의 교역 실적을 기록했다.
고 회장은 1981년 출범한 옥타 창립멤버다. 그는 "이민 초기에는 밥벌이에 급급했지만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보람을 찾고 싶었다"며 "모국에 가장 필요한 게 수출이라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포 상공인들과 모국상품 구매운동을 벌이고,동포 2세대들이 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차세대 무역사관생도 10만 양병'을 추진하고 있다.
고 회장은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직장이던 연합철강을 다닌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해외에서 '철강왕'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우선 한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제품을 미국에 팔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거들떠 보는 이가 드물었다.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1970년 중반 세계 철강시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순풍을 탔다.
고 회장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후에도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지금은 철강회사인 퍼시픽스틸코퍼레이션과 무역회사 코스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투자회사 코스인베스트먼트그룹,윌셔은행,미 100대 골프장에 드는 코스오크쿼리골프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1986년 인수한 윌셔은행은 당시 자본금 500만달러에서 25억달러로 성장했다. 한국계 최대 은행이다. 2005년과 2006년 포천 선정 '최근 3년간 초고속 성장기업'에서 각각 79위와 70위에 랭크됐다.
이 같은 경영 실적으로 고 회장은 2007년 5월 뉴욕 나스닥시장 폐장종을 울리는 영광을 누렸다. 같은 해 미국 역사와 이민사회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앨리스 아일랜드상'을 받았다.
고 회장은 롤 모델로 워런 버핏을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게 벌고 바르게 쓰기 때문이다. 그는 "돈만 벌면 장사꾼이지만 기업인이 되려면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5년 500만달러를 출연해 설립한 고선재단은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재단운영은 온 가족이 참여한다. 먼 훗날 자손들에게 '나눔의 DNA'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고 회장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목표는 윌셔은행을 미국 최고 은행으로 키우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쪽방에서 출발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를 따라잡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 회장은 "해외에서 사업하는 동포들의 시선은 언제나 고국을 향하고 있다"며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통해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민들의 박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제14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열고 있는 고석화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 회장(65 · 사진)은 "모국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한인경제인대회'는 세계 한인 무역 · 경제인들이 모국 경제발전을 위해 마련한 교류의 장이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대회에는 32개국에서 활동 중인 800여명의 한인 무역상과 국내 500여명의 정부 · 기업체 관계자들이 참가,해외시장 진출과 판로를 뚫는다. 투자환경 설명회,청년인력 해외취업 등의 상담도 이뤄진다. 옥타 측은 이번 대회에서 22일 현재 1억달러 규모의 교역 실적을 기록했다.
고 회장은 1981년 출범한 옥타 창립멤버다. 그는 "이민 초기에는 밥벌이에 급급했지만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보람을 찾고 싶었다"며 "모국에 가장 필요한 게 수출이라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포 상공인들과 모국상품 구매운동을 벌이고,동포 2세대들이 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차세대 무역사관생도 10만 양병'을 추진하고 있다.
고 회장은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직장이던 연합철강을 다닌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해외에서 '철강왕'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우선 한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제품을 미국에 팔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거들떠 보는 이가 드물었다.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1970년 중반 세계 철강시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순풍을 탔다.
고 회장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후에도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지금은 철강회사인 퍼시픽스틸코퍼레이션과 무역회사 코스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투자회사 코스인베스트먼트그룹,윌셔은행,미 100대 골프장에 드는 코스오크쿼리골프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1986년 인수한 윌셔은행은 당시 자본금 500만달러에서 25억달러로 성장했다. 한국계 최대 은행이다. 2005년과 2006년 포천 선정 '최근 3년간 초고속 성장기업'에서 각각 79위와 70위에 랭크됐다.
이 같은 경영 실적으로 고 회장은 2007년 5월 뉴욕 나스닥시장 폐장종을 울리는 영광을 누렸다. 같은 해 미국 역사와 이민사회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앨리스 아일랜드상'을 받았다.
고 회장은 롤 모델로 워런 버핏을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게 벌고 바르게 쓰기 때문이다. 그는 "돈만 벌면 장사꾼이지만 기업인이 되려면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5년 500만달러를 출연해 설립한 고선재단은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재단운영은 온 가족이 참여한다. 먼 훗날 자손들에게 '나눔의 DNA'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고 회장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목표는 윌셔은행을 미국 최고 은행으로 키우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쪽방에서 출발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를 따라잡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 회장은 "해외에서 사업하는 동포들의 시선은 언제나 고국을 향하고 있다"며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통해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민들의 박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