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모를만한 세금 문제는 보고하지 말고 직접 판단해서 결정하세요. 그 대신 평가는 냉정히 하겠습니다. "

백용호 국세청장(사진)이 취임 초 간부회의에서 한 말이다. 본인이 세무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백 청장은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상명하복'의 문화에만 익숙했던 간부들은 긴장했다. 하지만 책임이 커졌기 때문에 자발적인 업무 몰입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평이다.

자율성을 높여준 대신 고질적인 병폐인 인사청탁에는 '칼날'을 들이댔다. 백 청장은 최근 부이사관 등의 승진 인사에서 외부인사를 통해 인사청탁을 한 6명을 모두 탈락시켰다. '설마설마'하던 직원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초강수였다. 백 청장은 "내가 청장을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3일로 취임 100일 되는 백 청장은 이처럼 권한 이양과 청탁 근절로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덕분에 연초 한상률 전 청장의 불명예 퇴진 이후 혼란스러웠던 국세청은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백 청장이 지방국세청 폐지 등의 외부 개혁안을 거부한 것이 직원들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잠재웠다.

외풍을 막아가면서 내부적으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세무조사 중지 권한을 가진 납세자보호관을 신설하고,핵심 요직인 감사관과 전산정보관리관을 외부에 개방했다.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 대기업 세무조사는 4년마다 한다는 원칙도 정했다. 조사대상 선정 기준을 발표하는 등 자료 공개에도 전향적이다.

성과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외부인사 영입 역시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특별한 성과가 없을 경우 자리를 뺏긴 내부인사들의 실망을 부를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일정 부분 도덕성을 강제하고 개혁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직 안정 등의 성과들이 백 청장 개인의 리더십에 기인한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4년 주기 세무조사' 등의 개혁안은 정확히 명문화된 것이 아니어서 청장이 교체되면 얼마든지 다시 바뀔 수 있다.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없애기 위해 다른 부처와의 인사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획재정부와의 인사교류는 지난해 국세청 개혁이 한창 화두로 떠올랐던 강만수 재정부 장관 시절부터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