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형영씨(65)는 몇년 동안 매일 집 부근 관악산을 오르내리며 자연을 만났다. 시인 최두석씨(44)는 도시 속 산동네 재개발로 조성된 아파트에 살지만 아침마다 황조롱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깬다. 그런 두 시인이 나란히 자연을 바라보며 쓴 시들을 엮어 시집을 냈다.

최두석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투구꽃》(창비)에는 조팝꽃 등 식물부터 후투티같은 동물까지 자연을 향한 다정한 눈길이 가득하다.

몸을 낮춰야 보이는 것들도 놓치지 않는다. <족도리풀>에서 '바야흐로 새 잎 다투어 돋는 숲에서/ 다소곳이 받쳐든 족도리풀잎'을 만난 그는 '숨바꼭질하듯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족도리풀을 찾아 훔쳐본다고 말한다.

애증과 희비가 엇갈리는 인생의 길목에 설 때마다 '조금씩 먹으면 보약이지만/ 많이 넣어 끓이면 사약이 되는' 투구꽃을 떠올린다. '아찔하게 아리따운 꽃빛을 내기 위해/ 뿌리는 독을 품는 것이라 짐작하며/ 목구멍에 계속 침을 삼키고/ 뜨거워지는 배를 움켜쥐기도 한다. '(<투구꽃> 중)

자연의 이치를 마구 헝클어놓는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하기도 한다. <겨울 장미>에서 '된서리 내린 아파트 화단'에 '봉오리 겉잎이 얼어터진 장미'는 벌나비 날지 않는 겨울에 억지로 피어나게 된 죄로 자손도 남길 수 없는 처지다. 시인은 이렇게 일갈한다. '찬바람에 얼어터진 검붉은 꽃잎 보며/ 원예가여 기막힌 기술을 자랑 마라.'

"산 밑에 살면서 자연에서 얻은 시가 많다"는 김형영 시인은 여덟 번째 시집 《나무 안에서》(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두 영혼의 꽃 속에서의 만남'(<생명의 노래> 중)을 그려낸다.

이번 시집에서는 자연의 여러 생명체 중 유독 나무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산에 오르다/ 오르다 숨이 차거든/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가자'고 권하는 시인은 나무와 하나되는 경험을 말한다. '벚나무를 안으면/ 마음속은 어느새 벚꽃동산.'(<나무 안에서> 중)

<나무들>에서도 시인은 나무를 바라본다. '땅속에 뿌리박고 속삭일 때면/ 그 속삭이는 소리에 취해/ 나무들을 하나씩 껴안아본다. / 쓰다듬고 다독여준다. / 올해도 안녕하자고,'

자연의 순환도 흘려보내지 않는다. <연못>에서 그는 '늙은 뱀처럼/ 꼬리를 휘저으며' 흙탕물이 기어들어오자 순식간에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시궁창으로 변해버린 연못에 귀를 기울인다. '흙탕물이 고개를 숙일 때까지/ 썩어서 거름이 될 때까지.// 연못은 다시 환해지리라./ 석 달 열흘을/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질/ 수만 송이 연꽃으로.'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