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상을 바꾸는 비이성의 힘…"흔들 다리서 사랑 고백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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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 오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리더스북/ 232쪽/ 1만2800원
밴쿠버 최고의 관광지인 카필라노 캐년.이곳에는 지상 3m 높이의 목조다리가 하나 있고 그보다 위쪽에는 70m 높이의 흔들다리가 있다.
어느 날 젊은 여성이 각각의 다리 끝에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막 다리를 건너온 남자들에게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연구 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겠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남자들은 기꺼이 전화번호를 받아갔고 이후 전화가 울려댔다.
재미있는 것은 두 곳의 차이다. 안전한 목조다리를 건너온 남자 16명 중 전화를 건 것은 2명이었지만,흔들다리를 건너온 남자 18명 중 전화를 건 것은 9명이나 됐다. 왜 그럴까.
경영 컨설턴트인 오리 브래프먼과 심리학자 롬 브래프먼 형제는 《스웨이(Sway)》에서 이를 '카멜레온 효과'로 설명한다. 목조다리를 건넌 남자들은 설문조사 여성을 '보이는 그대로' 학구적인 조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흔들다리를 건넌 남자들은 70m 상공에서 느낀 불안감과 강력한 아드레날린 때문에 이성적인 관심을 강하게 보였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아드레날린 분비는 갑작스런 불안 상황이나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흥분상태에서 급증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흔들거리는 다리에서 사랑을 고백하라'고 말한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베테랑 조종사 반 잔텐의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반 잔텐은 1977년 네덜란드행 항공기를 몰다가 급유 기착지인 라스팔마스 공항 폐쇄로 테네리프 공항에 임시 착륙했다. 그는 운항 지연을 막기 위해 서둘러 이륙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활주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다급해진 그는 관제탑으로부터 활주로 진입 허가만 받고 이륙 허가는 받지 않은 채 이륙을 시도했다가 안개 속의 미국 팬암기와 충돌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기장과 승무원,승객 등 584명이 모두 숨졌다.
저자들은 베테랑 조종사가 왜 규약을 무시하고 화를 자초했는지를 '손실기피'라는 심리현상으로 분석한다. 인간에게는 이익을 얻으려는 심리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심리가 더 강하다는 것.여기에 '집착'이 따라붙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맥스 배저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20달러 경매'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낙찰자가 경매에 나온 20달러짜리 지폐를 차지하고 차점자는 자신의 입찰가를 물어주는 게임인데,최고가를 부른 두 학생은 입찰 경쟁이 20달러에 이를수록 당황한다. 둘 다 생돈을 내놓지 않으려고 계속 입찰가를 높이다가 결국 낙찰가는 204달러까지 올라간다.
멈출 수 없는 '비이성의 힘'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이라는 증거를 보고도 '이제까지 학계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거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허름한 차림으로 지하철 역사에서 연주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은 머리 속으로 미리 정해둔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치귀착'의 비이성적 속성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사례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면서 더 이상 비이성의 힘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정관념이나 직관적 허점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책 제목인 '스웨이'는 '의견이나 마음이 흔들리다,동요하다'라는 뜻.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심리적 힘에 이끌리는 것을 말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이 힘들이 개인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정치 상황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말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어느 날 젊은 여성이 각각의 다리 끝에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막 다리를 건너온 남자들에게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연구 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겠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남자들은 기꺼이 전화번호를 받아갔고 이후 전화가 울려댔다.
재미있는 것은 두 곳의 차이다. 안전한 목조다리를 건너온 남자 16명 중 전화를 건 것은 2명이었지만,흔들다리를 건너온 남자 18명 중 전화를 건 것은 9명이나 됐다. 왜 그럴까.
경영 컨설턴트인 오리 브래프먼과 심리학자 롬 브래프먼 형제는 《스웨이(Sway)》에서 이를 '카멜레온 효과'로 설명한다. 목조다리를 건넌 남자들은 설문조사 여성을 '보이는 그대로' 학구적인 조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흔들다리를 건넌 남자들은 70m 상공에서 느낀 불안감과 강력한 아드레날린 때문에 이성적인 관심을 강하게 보였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아드레날린 분비는 갑작스런 불안 상황이나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흥분상태에서 급증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흔들거리는 다리에서 사랑을 고백하라'고 말한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베테랑 조종사 반 잔텐의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반 잔텐은 1977년 네덜란드행 항공기를 몰다가 급유 기착지인 라스팔마스 공항 폐쇄로 테네리프 공항에 임시 착륙했다. 그는 운항 지연을 막기 위해 서둘러 이륙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활주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다급해진 그는 관제탑으로부터 활주로 진입 허가만 받고 이륙 허가는 받지 않은 채 이륙을 시도했다가 안개 속의 미국 팬암기와 충돌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기장과 승무원,승객 등 584명이 모두 숨졌다.
저자들은 베테랑 조종사가 왜 규약을 무시하고 화를 자초했는지를 '손실기피'라는 심리현상으로 분석한다. 인간에게는 이익을 얻으려는 심리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심리가 더 강하다는 것.여기에 '집착'이 따라붙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맥스 배저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20달러 경매'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낙찰자가 경매에 나온 20달러짜리 지폐를 차지하고 차점자는 자신의 입찰가를 물어주는 게임인데,최고가를 부른 두 학생은 입찰 경쟁이 20달러에 이를수록 당황한다. 둘 다 생돈을 내놓지 않으려고 계속 입찰가를 높이다가 결국 낙찰가는 204달러까지 올라간다.
멈출 수 없는 '비이성의 힘'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이라는 증거를 보고도 '이제까지 학계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거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허름한 차림으로 지하철 역사에서 연주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은 머리 속으로 미리 정해둔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치귀착'의 비이성적 속성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사례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면서 더 이상 비이성의 힘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정관념이나 직관적 허점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책 제목인 '스웨이'는 '의견이나 마음이 흔들리다,동요하다'라는 뜻.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심리적 힘에 이끌리는 것을 말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이 힘들이 개인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정치 상황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말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