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건드리지 마."

지적 장애를 가진 김대연씨(24)가 송병준 번동코이노니아 원장에게 귀찮다는 듯 한 손을 가로저었다. 명색이 장애인 보호 작업시설의 원장이 말을 거는 데도 한치의 망설임이 없다. 쳐다보지도 않고 붓질에만 관심이다.

송 원장도 무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작업할 때는 방해받는 걸 정말 싫어한다"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장애인 미술 작품전에서 서울시장상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씨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우리은행이 22일 결연식을 가진 사회적 기업 '번동코이노니아'의 모습은 이랬다. 눈에 띄는 점이라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뿐 자유분방한 화실 그 자체였다. 우리은행은 이날 결연식을 계기로 자원봉사단을 꾸준히 보내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고 경영컨설팅 제공,생산제품 구매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그림으로 자활 꿈꾸는 사회적 기업

큰 붓을 빙빙 돌려대며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던 최순철씨(21)가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눈길을 끈다. "저 친구가 저래 봬도 '이거다'하고 그리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그림을 내놓는다"며 송 원장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가리킨다. 최씨는 올해 장애인 미술 작품전에서 '유원지 바다'라는 작품으로 서울시장상을 받은 간판 화가다.

서울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번동코이노니아의 20평 남짓한 작업실.그곳에서는 21명의 지적 장애인들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릴 뿐이지만 그 그림은 유명 소설의 삽화가 되고,달력이 되고,다이어리가 된다. 미래에셋그룹과 유한양행의 사보 표지도 이 그림들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취임 인사장에도 번동코이노니아 화가들의 작품이 밑그림으로 깔렸다. 적게는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받는 작품비는 그 그림을 그린 장애인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모든 '화가'에게 지급되는 기본수당 10만원과는 별개다. 장애인들의 취미활동이 경제활동으로 연결되는 회사,노동의 공간이기에 앞서 놀이의 장소인 사업장이 번동코이노니아다.

그림으로 맺은 인연

우리은행이 번동코이노니아와 연을 맺은 것은 2007년 10월.우리은행 박물관 전시실에서 제2회 서울 지적 장애인 미술작품전이 열렸다. 번동코이노니아 직원들의 그림도 거기 있었다. 어떤 가식도 없이 맑기만한 작품에 우리은행 기관고객본부 직원들이 마음을 뺏겼다. '화가들'에게 바깥 세상을 더 자주 보여주고 문화행사도 관람할 수 있게 하면 작품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11월 '난타' 공연에서 첫 만남을 가졌고 이듬해 6월엔 코미디 뮤지컬 '브레이크 아웃'을 보며 함께 환호했다. 2008년 9월엔 서울 인사동에서 제3회 작품전이 열리자 우리은행 기관고객본부 직원들은 작품 2점을 구입하는 것으로 서로의 끈끈한 정을 확인했다. 올 3월엔 영화 '드래곤볼'을 함께 보며 서로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 했고,그날 제3회 서울지적장애인 미술작품전 수상자인 김대현씨는 번동코이노니아 화원 21명을 대표해 자신의 작품 '새로운 미래'를 우리은행에 선물했다.

송 원장은 "작품활동을 하려면 바깥세상을 자주 접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우리은행 직원들 덕에 귀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봉사활동팀 1000여개 운영

우리은행은 번동코이노니아 지원 외에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임직원들은 매달 급여 중 일부를 떼어내 '우리사랑기금'과 '우리어린이사랑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1계좌당 1000원을 기본 단위로 해 원하는 만큼 기부할 수 있다. 은행도 적립금액만큼을 1대1 매칭 방식으로 보탠다. 8월 말 현재 약 6000명의 임직원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사랑기금'에는 올 한해 약 2억5000만원이 모였다. 도서벽지 어린이들과 장애인,저소득가정 환아 등을 도우는 데 쓰였다. 8000여명이 동참하고 있는 '우리어린이 사랑기금'은 매달 어린이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400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몸으로 실천하는 자원봉사에도 열심이다. 전국 1000여개 지점의 직원들이 빠짐없이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모든 지점이 3개월 단위로 자원봉사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엔 직원 1만9000여명이 1800여 건의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