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뉴스] 외고 출신, 외국어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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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는 한때 ‘학문의 언어’로 불리던 언어다. 과거 라틴어나 불어가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19세기 독일어가 학문분야에서 이뤄 물리학, 화학, 광학, 지질학, 지리학, 생물학, 법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미학 등에서 오늘날의 영어와 같은 위세를 차지하기도 했다.
맑스와 막스 베버, 프로이트, 만하임, 랑케, 빙켈만부터 아인슈타인까지 19세기말 20세기초 각 학문분야의 거두들이 집중적으로 독일어권에서 배출되고, 전기·화학 혁명이 중심이 된 2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독일이 부각되면서 자연스레 독일어는 학문과 기술분야에서 세계적 지위를 얻게됐다.
학문세계의 의사소통에서 독일어가 세계언어로서 역할을 차지하게되면서 영국의 생물학자 사보리는 “과학세계의 언어는 하이델베르크와 괴팅엔의 언어이기도 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때 젊은 학자들에겐 공부를 계속하려면 독일어를 배우라고 일반적으로 권해졌다”고 한다.
실제 19세기말 20세기초 전세계 생물학 관련 학술잡지에 등장한 논문의 3분의 1이 독일어로 쓰여졌고, 1940년대까지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독일어를 읽지 못하면 최신 학문동향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1920년대 미국 학술지를 살펴보면 매우 높은 비율로 독일어 논문이 등장했고,러시아와 일본 학술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다 해당국가 언어로 논문이 쓰였더라도 초록은 독일어로 요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동물학 등 생물학관련 학문에선 1차대전 전후까지 독일어가 ‘링귀아 프랑카(공용어)’의 위치를 확연히 굳혔었다.
이는 생물학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어서 화학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화학분야에서도 독일어를 말하진 못해도 읽을 줄 아는게 학문의 기본요건으로 자리잡았다. 1930년대까지 미국대학에서도 화학교제는 독일어로 쓰여진 것이 사용됐다. 이에 따라 “학문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독일어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자연스레 1910년대 노벨상 화학상을 수상한 10인중 5명이, 20년대 수상자 8명중 3명이 독일어권 출신이거나 독일 대학 등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자연과학 이외 분야에서도 독일어는 위세를 부렸다. 법학에서 독일어는 포르투갈과 일본에서 큰 영향을 미쳐 법률가와 법학자들은 독일어를 파고 들었고,1930년대까지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는데도 독일어 해독능력이 요구됐다. 특히 부국강병을 위해 자연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메이지 일본에서 독일어는 더욱 활발하게 수용됐고, 이는 이후 오랫동안 한국사회에도 실제 필요이상 독일어가 과도하게 교육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어가 학문의 세계에서 끝발을 날리게 된 데는 독일의 대학 모델이 근대 대학의 모범으로 확립되면서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점도 한몫했다.
1810년 훔볼트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한 프로이센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베를린대학을 창설한 뒤 ‘가르치는 자유(Lehrfreiheit)’와 ‘배우는 자유(Lernfreiheit)’를 강조하면서, 이같은 자유가 모든 분야의 학문연구를 새롭게 촉진시키고 독일 대학과 학문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국가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순수학문에 대한 연구가 고양되고 엄격한 도제식 훈련과정을 통한 인재양성이 이뤄지면서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큰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화려한 성과가 나타나자,연구를 중시하는 베를린 대학의 이념과 제도는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영국에선 독일대학의 영향을 받아 중산층 교육기관으로 런던대학이 설립되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실용적 전문적인 ‘시민대학(Civiv Universities, Red Brick Universities)’들이 창설됐다. 이들은 독일대학의 연구과정을 참고하고 새로운 교과과정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독일의 교수와 연구원을 초빙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1875년 존스홉킨스 대학이 창설되면서 미국 대학사의 이정표를 세우는데, 초대 총장 대니얼 길먼은 이 대학을 연구 중심의 대학원 대학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독일 대학의 실험 및 세미나 수업방법을 도입하고 교과목도 확대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모델은 즉시 다른 대학에 영향을 미쳐 클라크 대학과 시카고 대학이 이를 본받게 됐다. 곧이어 하버드의 엘리어트 총장도 길먼의 뒤를 따랐다. 1800년대 거의 1만여명의 미국인들이 독일에서 공부했고 하버드 프린스턴 등 미국 명문대학 교수진은 대부분 독일 유학파들로 체워지게 된다.
하지만 양차 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이 급속도로 영어권으로 옮겨가고, 독일어권 석학들이 대거 미국 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독일 대학과 독일어의 위상은 급락하기 시작한다. 전후 독일의 대학평준화 정책도 새로운 시대 독일대학의 경쟁력 강화엔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됐다. 결국 최근 발표된 영국 타임지 선정 세계 100대 대학에 독일 대학은 50위권에 단 한곳도 포함되지 못하고 100대 대학에 단 4곳만이 포함돼 독일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한때 독일어는 거의 대부분의 학문분야에서 ‘공용어’의 지위를 차지했었지만, 현실과 학문세계의 주도권이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그 위상을 급격히 잃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독일어가 한때 잘나가다 이제 ‘찬밥’ 신세가 됐다는 것이 아니다. 독일이 소위 ‘잘나갈 때’ 미국과 영국, 일본은 단지 독일어와 독일문학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독일의 과학과 경제, 사상 등 여러 분야에서 ‘독일어’라는 틀을 통해 ‘내용’을 배우고, 소화하고 또 이를 극복했다.
최근 갑작스레 외국어고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개인적으로 외고를 폐지해야 할지말지, 또는 과연 외고 출신을 엘리트하고 할 수 있을지 아닌지 등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바도 없을 뿐 아니라 생각이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소위 ‘외국어 인재’들은 꼭 어문계열 학과로만 진학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문제에선 입장이 조금 다르다.
결론적으로 “외고가 설립취지와 달리 입시기관으로 변질됐다”는 주장과 함께 외고출신의 어문계열 진학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되는 데 대해선 개인적으로 외고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학고의 이공계열 진학률이 80%대인데 외고의 어문계열 진학률이 예를 들어 20%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말이다.) 단순한 통역관 양성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닌 어학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어학인재=어문계열 전공자’로 보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현대의 학문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 제대로 공부하려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외국어 능력을 필요로 하는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영어는 기본이고 일부 분야에선 제2 외국어 능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한국어만 하면 된다고 흔히 여겨지는 국문학이나 국사학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국문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외국 문학을 어느정도 원어로 독파할 능력이 있다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특질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한국사의 경우도 이미 한국어와 한문 실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상당수준의 일어와 영어 능력은 필수이고, 전공에 따라 중국어와 만주어, 몽골어, 러시아어 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또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연구결과를 습득할 때 보다 넓은 시야에서 폐쇄적이지 않은 보편적이고도 독창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영어능력과 제2외국어 구사능력이 어문계열 학생들보다는 다른 전공자가 갖췄을 때 사회 전체적으로도 보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어일문학 전공자가 일어 문학작품 해독능력을 깊이 갖추는 것보다, 소위 전자공학과 등 공과대학생들이 일어에 능통한 것이 (실용성을 중시하는 요즘 풍토에서 보더라도) 소위 쓸모나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독문학 해석에 쓰이는 독어보다 법학이나 기계공학에 사용되는 독어가 이른바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더 효용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외고에서 외국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의외로 외고 출신들의 외국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비판한다면 설립취지를 운운하는 게 적합하겠지만, 단지 영문과 노문과 중문과에 많이 가지 않았다고 외국어 인재 양성이란 설립목표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시각이 아닐까 싶다. 외고의 입시학원화와 그에 따른 각종 사회문제, 또 기대에 못미치는 졸업생들의 실력을 비판하는 것은 타당한 면이 있지만 단지 어문계열에 많은 학생들이 가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트집잡기에 가까울 듯 싶다.
외국어 능력을 갖춰 경영학,전자공학,농학,무역학,심리학을 하는 것이 영문과 불문과, 일문과 가는 것보다는 훨씬 외국어 인재양성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을까 싶다는 개인적 생각을 적어봤다.
<참고한 책>
Ulrich Ammon, Ist Deutsch Noch Internationale Wissenschaftssprache?- Englisch Auch Für Die Lehre an Den Deutschsprachigen Hochschulen, Walter de Gruyter 1998
‘Nur vier deutsche Unis gehören zur Elite’,슈피겔 2009년 10월 8일자
김영한,‘서양의 대학-역사와 이념’, 이기백 편, 한국사 시민강좌 18집-한국 대학의 역사 中,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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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막스 베버, 프로이트, 만하임, 랑케, 빙켈만부터 아인슈타인까지 19세기말 20세기초 각 학문분야의 거두들이 집중적으로 독일어권에서 배출되고, 전기·화학 혁명이 중심이 된 2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독일이 부각되면서 자연스레 독일어는 학문과 기술분야에서 세계적 지위를 얻게됐다.
학문세계의 의사소통에서 독일어가 세계언어로서 역할을 차지하게되면서 영국의 생물학자 사보리는 “과학세계의 언어는 하이델베르크와 괴팅엔의 언어이기도 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때 젊은 학자들에겐 공부를 계속하려면 독일어를 배우라고 일반적으로 권해졌다”고 한다.
실제 19세기말 20세기초 전세계 생물학 관련 학술잡지에 등장한 논문의 3분의 1이 독일어로 쓰여졌고, 1940년대까지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독일어를 읽지 못하면 최신 학문동향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1920년대 미국 학술지를 살펴보면 매우 높은 비율로 독일어 논문이 등장했고,러시아와 일본 학술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다 해당국가 언어로 논문이 쓰였더라도 초록은 독일어로 요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동물학 등 생물학관련 학문에선 1차대전 전후까지 독일어가 ‘링귀아 프랑카(공용어)’의 위치를 확연히 굳혔었다.
이는 생물학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어서 화학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화학분야에서도 독일어를 말하진 못해도 읽을 줄 아는게 학문의 기본요건으로 자리잡았다. 1930년대까지 미국대학에서도 화학교제는 독일어로 쓰여진 것이 사용됐다. 이에 따라 “학문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독일어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자연스레 1910년대 노벨상 화학상을 수상한 10인중 5명이, 20년대 수상자 8명중 3명이 독일어권 출신이거나 독일 대학 등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자연과학 이외 분야에서도 독일어는 위세를 부렸다. 법학에서 독일어는 포르투갈과 일본에서 큰 영향을 미쳐 법률가와 법학자들은 독일어를 파고 들었고,1930년대까지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는데도 독일어 해독능력이 요구됐다. 특히 부국강병을 위해 자연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메이지 일본에서 독일어는 더욱 활발하게 수용됐고, 이는 이후 오랫동안 한국사회에도 실제 필요이상 독일어가 과도하게 교육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어가 학문의 세계에서 끝발을 날리게 된 데는 독일의 대학 모델이 근대 대학의 모범으로 확립되면서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점도 한몫했다.
1810년 훔볼트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한 프로이센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베를린대학을 창설한 뒤 ‘가르치는 자유(Lehrfreiheit)’와 ‘배우는 자유(Lernfreiheit)’를 강조하면서, 이같은 자유가 모든 분야의 학문연구를 새롭게 촉진시키고 독일 대학과 학문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국가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순수학문에 대한 연구가 고양되고 엄격한 도제식 훈련과정을 통한 인재양성이 이뤄지면서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큰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화려한 성과가 나타나자,연구를 중시하는 베를린 대학의 이념과 제도는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영국에선 독일대학의 영향을 받아 중산층 교육기관으로 런던대학이 설립되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실용적 전문적인 ‘시민대학(Civiv Universities, Red Brick Universities)’들이 창설됐다. 이들은 독일대학의 연구과정을 참고하고 새로운 교과과정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독일의 교수와 연구원을 초빙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1875년 존스홉킨스 대학이 창설되면서 미국 대학사의 이정표를 세우는데, 초대 총장 대니얼 길먼은 이 대학을 연구 중심의 대학원 대학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독일 대학의 실험 및 세미나 수업방법을 도입하고 교과목도 확대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모델은 즉시 다른 대학에 영향을 미쳐 클라크 대학과 시카고 대학이 이를 본받게 됐다. 곧이어 하버드의 엘리어트 총장도 길먼의 뒤를 따랐다. 1800년대 거의 1만여명의 미국인들이 독일에서 공부했고 하버드 프린스턴 등 미국 명문대학 교수진은 대부분 독일 유학파들로 체워지게 된다.
하지만 양차 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이 급속도로 영어권으로 옮겨가고, 독일어권 석학들이 대거 미국 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독일 대학과 독일어의 위상은 급락하기 시작한다. 전후 독일의 대학평준화 정책도 새로운 시대 독일대학의 경쟁력 강화엔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됐다. 결국 최근 발표된 영국 타임지 선정 세계 100대 대학에 독일 대학은 50위권에 단 한곳도 포함되지 못하고 100대 대학에 단 4곳만이 포함돼 독일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한때 독일어는 거의 대부분의 학문분야에서 ‘공용어’의 지위를 차지했었지만, 현실과 학문세계의 주도권이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그 위상을 급격히 잃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독일어가 한때 잘나가다 이제 ‘찬밥’ 신세가 됐다는 것이 아니다. 독일이 소위 ‘잘나갈 때’ 미국과 영국, 일본은 단지 독일어와 독일문학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독일의 과학과 경제, 사상 등 여러 분야에서 ‘독일어’라는 틀을 통해 ‘내용’을 배우고, 소화하고 또 이를 극복했다.
최근 갑작스레 외국어고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개인적으로 외고를 폐지해야 할지말지, 또는 과연 외고 출신을 엘리트하고 할 수 있을지 아닌지 등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바도 없을 뿐 아니라 생각이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소위 ‘외국어 인재’들은 꼭 어문계열 학과로만 진학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문제에선 입장이 조금 다르다.
결론적으로 “외고가 설립취지와 달리 입시기관으로 변질됐다”는 주장과 함께 외고출신의 어문계열 진학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되는 데 대해선 개인적으로 외고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학고의 이공계열 진학률이 80%대인데 외고의 어문계열 진학률이 예를 들어 20%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말이다.) 단순한 통역관 양성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닌 어학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어학인재=어문계열 전공자’로 보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현대의 학문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 제대로 공부하려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외국어 능력을 필요로 하는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영어는 기본이고 일부 분야에선 제2 외국어 능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한국어만 하면 된다고 흔히 여겨지는 국문학이나 국사학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국문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외국 문학을 어느정도 원어로 독파할 능력이 있다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특질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한국사의 경우도 이미 한국어와 한문 실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상당수준의 일어와 영어 능력은 필수이고, 전공에 따라 중국어와 만주어, 몽골어, 러시아어 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또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연구결과를 습득할 때 보다 넓은 시야에서 폐쇄적이지 않은 보편적이고도 독창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영어능력과 제2외국어 구사능력이 어문계열 학생들보다는 다른 전공자가 갖췄을 때 사회 전체적으로도 보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어일문학 전공자가 일어 문학작품 해독능력을 깊이 갖추는 것보다, 소위 전자공학과 등 공과대학생들이 일어에 능통한 것이 (실용성을 중시하는 요즘 풍토에서 보더라도) 소위 쓸모나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독문학 해석에 쓰이는 독어보다 법학이나 기계공학에 사용되는 독어가 이른바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더 효용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외고에서 외국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의외로 외고 출신들의 외국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비판한다면 설립취지를 운운하는 게 적합하겠지만, 단지 영문과 노문과 중문과에 많이 가지 않았다고 외국어 인재 양성이란 설립목표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시각이 아닐까 싶다. 외고의 입시학원화와 그에 따른 각종 사회문제, 또 기대에 못미치는 졸업생들의 실력을 비판하는 것은 타당한 면이 있지만 단지 어문계열에 많은 학생들이 가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트집잡기에 가까울 듯 싶다.
외국어 능력을 갖춰 경영학,전자공학,농학,무역학,심리학을 하는 것이 영문과 불문과, 일문과 가는 것보다는 훨씬 외국어 인재양성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을까 싶다는 개인적 생각을 적어봤다.
<참고한 책>
Ulrich Ammon, Ist Deutsch Noch Internationale Wissenschaftssprache?- Englisch Auch Für Die Lehre an Den Deutschsprachigen Hochschulen, Walter de Gruyter 1998
‘Nur vier deutsche Unis gehören zur Elite’,슈피겔 2009년 10월 8일자
김영한,‘서양의 대학-역사와 이념’, 이기백 편, 한국사 시민강좌 18집-한국 대학의 역사 中,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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